A은행의 동대문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박모 대리는 최근 거래 고객의 가게에서 옷장사를 도왔다. 두 달째 대출 이자를 못낸 고객의 사정을 알아보러 갔다가 이월 상품을 처분하는 광경을 보고 함께 옷을 팔게 된 것.박 대리는 "연체이자를 갚기 위해 싼 값에 옷을 내놨다는 고객 얘기를 듣고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은행원들이 연체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올 들어 연체율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본격화한 경기 침체 탓에 연체 한번 없던 우량고객들마저 "이자 낼 돈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올 들어 지난달 16일까지 늘어난 연체액이 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이 은행 연체 증가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은행들은 이 때문에 연체 가능성이 있는 대출자들에게 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문자 메시지나 전화로 이자 낼 날짜를 미리 알려주는 것은 기본이다. 대출자가 사업자이면 매출까지 올려주는 데 발벗고 나서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태릉지점장은 "장사가 안되는 고객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부러 다른 고객을 만나거나 지점 회식을 해서 매출을 늘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체 고객의 점포를 찾아가면 압박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연체를 하지 않은 고객들은 고마워하며 어느 돈보다 먼저 갚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 영업점에선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내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이자만 받고 원금은 만기 때 회수하도록 상환 방식을 바꿔주고 있다.

월 이자도 버거워하면 이자를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씩 나눠 내도록 상환 일정도 조정해 준다. 이자를 갚지 못한 기간이 한 달이 넘어야 연체자로 잡히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이자를 받으면 연체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믿을 만한 고객이 연체 위험에 빠지면 개인 돈을 빌려주는 은행원들도 있다.

경기도 공단 지역에서 근무 중인 한 지점장은 "10년간 거래한 업체의 사장이 이달 들어 이자 일부를 못내 개인 돈을 잠시 빌려줬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은 한번 연체하면 헤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체가 되면 6~8%포인트가량의 가산금리가 붙는다. 연체 전 금리가 연 6%라면 연체 후에는 연 14%로 훌쩍 뛴다. 연체 기간이 3개월을 넘기면 연체액이 계속 증가하는 데다 가산금리가 10%포인트로 올라 상환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연체자가 늘면 은행들이 입는 손해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연체액이 1000억원이라면 은행 연체율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며 이자수익상 연간 약 60억원(연 이자율 6% 가정)의 손실을 본다.

여기에 아예 못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연체액의 10% 안팎(요주의 여신 가정)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160억원 정도의 수익이 줄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떨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를 줄여야 수익성과 건전성이 모두 좋아지기 때문에 모든 은행들이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연체관리 특별 기구를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