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자유무역도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출이 일제히 급감하면서 보호무역이 기승을 부리고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한 다툼이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수출 감소는 지난해 11월부터 본격화됐다. 중국은 11~12월 두 달 연속 2% 이상 수출이 줄고 일본은 30% 이상 감소했다.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수입이 격감한 탓이다. 12월 한국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9% 감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출 부진은 내수 부양을 절실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에 치중하고 있다. 미국 하원을 통과한 819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은 공공사업을 펼칠 때 미국산 철강을 써야 한다고 못박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달 31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의 조치를 '보호주의'라고 비난했지만 독일 영국 프랑스 할 것 없이 자동차업체를 비롯한 자국 산업 보호에 자금 투입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자국 산업 및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서 통상 마찰이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중국은 수출을 지켜내기 위해 통화가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지 오래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달 2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환율을 조작(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것)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촉발돼 급기야 양국 대통령이 30일 전화통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환율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전한 것 같지만 위기상황이 지속돼 무역전쟁과 환율전쟁이 언제든지 폭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경제환경 악화는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치명타를 입힌다. 지난 1월에도 수출이 30% 이상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 올해 경상수지는 흑자를 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지만 수출이 지금처럼 급격하게 줄어들면 소폭의 경상수지 흑자마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워낙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어 뾰족한 대책을 찾기가 어렵다"며 "G20 등의 국제무대를 활용해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