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경쟁력 낮아 외국계 밥상 챙겨주기"
"과도한 우려…학습비용 치를 뿐" 반론도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자본시장 발전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국부(國富)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제정 당시인 2007년7월 양호한 경제상황과는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금융산업에 대한 감시 강화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자통법이 시행되자 이런 시각들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경제조사실장은 1일 "자통법 시행으로 금융산업의 장(場)이 넓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면서도 "누구든 들어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경제위기 속에서 선진금융기법과 위기관리 면에서 토종이 외국계에 비해 열세에 있는 가운데 시행된다는 점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우리가 선진금융기법을 이용해 해외로도 수출할 수 있는 글로벌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이런 가운데 활짝 열린 자본시장에서 행여 외국인들만 이익을 누리는 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의 김동환 금융회사 경영연구실장은 "자통법으로 외국과 국내 금융사의 차별성을 거의 없애는 것은 금융제도를 글로벌화 하는 의미는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국부유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국내 금융사들의 투자자 보호장치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개정된 자통법과 시행령에서 위험상품 취급 관련규정이 당초보다 다소 약화됐고 금융회사에 유리하게 고쳐졌다"며 "투자자 보호에 대한 노하우가 쌓인 외국계 상품으로 투자자들이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증권사들의 소액 지급결제시스템 참여를 허용하게 되면 외국계 증권사들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로도 자금이 몰릴 수 있다"면서 "그럴 경우는 외국계가 큰 자본을 들여오지 않고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해 국내 시장에서 투자 이익을 챙기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진 제도에 한층 다가선 규제 완화와 새로운 금융시스템 도입으로 국내 금융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자통법이 경제위기라는 암초와 국내 금융사의 낮은 경쟁력으로 인해 오히려 `외국인 밥상'만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시민연대(소장 김상조)도 "자통법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법문에 쓰인 추상적인 내용의 투자자 보호의무가 아니라 이러한 의무의 이행을 보장하는 금융투자회사의 내부통제장치, 감독당국의 엄정한 감독, 법원의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판결 등 절차적 인프라의 구축"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연대는 "투자자 보호장치 도입, 차이니즈월(업체내 정보차단장치) 설치 등이 법 시행과 동시에 이뤄지기 어렵다면 법 시행 자체를 연기하고 준비기간을 거치는 것이 자통법 제정 취지에도 부합할 뿐만아니라 자통법 시행의 위험요소도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자통법 시행을 위한 법 제정 이후 1년반 동안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쳐 투자자 보호장치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쳤고, 금융사의 내부 통제시스템도 한층 강화할 것"이라면서 `자통법 시행 위험론'은 지나친 우려라고 반박했다.

한 대형 증권사 경영전략본부장도 "국내 금융사의 경쟁력 부족을 이유로 규제 완화를 미룬다면 국내 금융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시점이 그만큼 늦어지는 것"이라면서 "자통법 시행초기 외국계 의 수익달성에 다소 유리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선진금융기법 `학습 비용'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내 금융사들이 외국계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선진금융기법을 얼마나 빨리 습득해 초기 열세를 극복하는가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