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국경도,오늘의 적도 모두 잊어라.과감한 '짝짓기'로 오직 내일의 생존만을 생각하라."극심한 경기 침체로 세계시장이 잔뜩 움츠린 가운데 글로벌 대기업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대규모 인수 · 합병(M&A)과 전략적 제휴에 공격적으로 베팅하면서 글로벌 산업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반도체와 전자 자동차를 비롯해 철강 기계 항공 제약 식품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업종에서 덩치 키우기가 진행되고 있다. 각국의 간판 기업들은 위기 이후에 대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고 있으며,신흥국에서는 세계 무대에 내놓을 강자를 키우기 위한 국내 기업 간 M&A가 한창이다.

업계 재편이 가장 빠르게 이뤄지는 산업 분야는 반도체다. 세계 5위 D램 업체인 독일 키몬다의 파산 신청을 계기로 반도체업계 구조조정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NEC와 도시바가 반도체사업 통합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도시바의 시스템LSI(대규모 집적회로) 사업을 분사시켜 NEC의 반도체 자회사와 합치는 방안이 유력하다.

또 일본 엘피다는 프로모스 파워칩 렉스칩 등 대만 3개 반도체 업체와 합병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D램 시장은 이들 연합군단과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등 한국 업체의 대결 구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동차업계도 구제금융을 수혈받은 미국 '빅3'를 중심으로 합종연횡이 가시화되고 있다. 포드는 '볼보'를 30억달러 선에 매물로 내놓고,지리자동차와 상하이자동차그룹(SAIC) 등 중국 업체들과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이다.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피아트그룹에 지분 35%를 넘기는 대신 소형차 엔진과 트랜스미션 및 연료절감 기술 등을 받기로 했다.

철강업계에서는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소형 철강회사를 통합,세계시장에 진출시킨다는 전략이다. 지난달 30일 허베이강철 자회사인 탕산강철이 한단강철과 청더신신판타이를 합병했다. 합병회사의 생산능력은 연간 2086만t으로 세계 5위 바오산강철(2260만t)에 이어 중국 내 두 번째 규모다. 중공업 부문에서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발전설비 부문 제휴가 눈길을 끈다. GE와 미쓰비시는 화력 및 원자력 발전에 사용하는 친환경 고효율 터빈의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도 덩치 키우기가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델타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이 전격 합병,매출 350억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항공사가 탄생했다. 유럽 최대 항공사인 에어프랑스-KLM 그룹은 지난 12일 이탈리아 국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항공 지분 25%를 4억4300만달러에 사들였다.

제약업계에서는 지난 26일 세계 1위인 미국 화이자가 라이벌 업체 와이어스를 68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빅딜의 포문을 열었다. 식음료업계의 인수ㆍ합병(M&A) 행보도 두드러진다. 코카콜라가 중국 1위 음료업체 후이위안 인수를 추진 중이고 일본 2위 맥주회사 기린홀딩스는 동남아시아 최대 맥주업체인 필리핀 산미구엘 지분 매입에 합의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