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설 대목엔 영광 굴비의 매출이 총 3500억원에 달했는데 올해는 2000억원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영광(榮光)스럽던 굴비가 이젠 '영꽝' 굴비가 될까 걱정입니다. "

오진근 법성포굴비특품사업단장은 설 대목이 끝난 2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전남 영광군 내 450개 굴비 판매업체로 구성된 이 사업단은 불경기를 감안해 올해 설 대목 매출 목표를 작년보다 30%나 낮춰 잡았다. 하지만 결과는 작년의 반토막에 불과할 형편이다.

명절 선물로 첫손 꼽던 굴비 선물세트가 올해 설 대목엔 백화점,대형마트 등에서 맥없이 추락했다. 유통업체들은 그 이유를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작년 추석에 이어 올해 설 대목 직전에도 중국산 조기가 '짝퉁 영광 굴비'로 둔갑,대규모로 유통된 사실이 적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신을 샀다. 둘째,선물문화가 달라진 것도 굴비의 인기를 퇴조시켰다. 굴비 선물세트(10마리 기준)는 20만~30만원대가 보통이어서 백화점에서도 고가 선물로 꼽힌다. 반면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은 10만원 안팎의 가격에 선택폭이 넓다. 셋째,핵가족화로 장시간 냉장 · 냉동보관하는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 점도 한 이유다.

설 대목을 망친 주요인인 원산지 속이기는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조기는 국내산과 중국산의 모양이 흡사해 경험 많은 상인들도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서해에서 잡히는 조기를 국내 어선이 잡으면 국내산,중국 어선이 잡으면 중국산이 된다는 말도 나돈다. 그만큼 짝퉁이 쉽게 유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광군 측은 "정부기관,굴비업체들과 함께 꾸준히 원산지 단속을 펴왔지만 워낙 은밀하게 거래가 이뤄져 근절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사실 단속 공무원도 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영광군은 중국산 조기를 국산으로 둔갑시키거나 원산지 조작으로 발각된 유통업체에 대해선 앞으로 '영광굴비'라는 공동 브랜드를 못 쓰게 하는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다.

고려 · 조선시대 최고 진상품이던 영광 굴비는 이름 자체가 '비굴하게 아부하는 선물이 아니다(屈非)'란 뜻을 담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귀한 선물이다. 일부 업자들의 소탐대실로 인해 애써 굴비 선물세트를 만든 영광군민들만 피해를 보게돼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