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늑장처리에 일부 규정 아직 미완
내달 4일부터 여의도 금융가 변모 가시화


한국 자본시장 발전사에 획기적 전환점이 될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의 시행일(2.4)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금융당국과 증권업계 준비가 미흡해 시행 초기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 자산운용, 선물, 종금, 신탁 등 자본시장 관련업종 간 벽이 허물어지면서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투자자 보호를 강화키로 했으나 구체적인 규정 마련이 늦어져 일선 창구에서 혼란이 예상된다.

◇ 투자자 보호규정 여전히 `작업중' = 금융당국은 자통법 시행에 맞춰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자를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전문성과 보유자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위험감수 능력이 있는 전문투자자와 그렇지 못한 일반 투자자로 구분해 금융사들이 상품 판매시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전문투자자에게는 금융투자협회에 사전 등록해 확인증을 받도록 했으나 협회에서 마련한 규정안이 금융위원회 승인도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구체적인 등록절차는 미확정 상태다.

펀드 판매인력의 경우도 증권, 부동산, 파생상품 등 관련 분야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으나 정작 자격시험은 자통법 시행 이후에 실시된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기존 자격으로 당분간 판매 활동을 하도록 유예해주긴 했지만 오는 5월부터 자격증이 없으면 해당 펀드를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 부동산.파생상품 펀드 판매 담당자들은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불완전 판매 위험성이 급부상하면서 금융당국이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위험 등급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고위험(적색:옵션 매도, 레버리지 상품)-중위험(주황:선물환)-저위험(노랑:스왑,옵션매수) 등으로 구분원칙만 정해놓은 상태다.

파생상품 투자자들이 색깔로 위험등급을 매겨놓은 상품설명서를 받아보고 투자위험을 가늠할 수 있기까지는 역시 수개월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증권사들이 금융투자업무 간 이해 상충을 막기 위해 자기자본투자(PI) 부문을 기존 투자은행(IB) 부문과 분리하는 등 조직개편이 필요하지만 일부 대형사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적극적인 조직 정비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통법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좀 더 강한 내부통제와 조직관리를 요구하고 있으나 PI와 IB 분리와 같은 조직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부자거래 등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 빈발해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시행 20여일전 국회통과에 볼멘소리 = 이처럼 금융당국과 금융업계의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이들이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 탓도 있지만 국회에서 관련법이 늑장 처리된 데도 상당부분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11월12일 제출한 자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한 것은 지난 13일이다.

자통법 시행을 불과 20여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이 개정안에는 파생상품 투자권유시 투자목적과 경험 등을 고려한 투자권유 준칙을 마련하도록 하는 동시에 투자권유 대행 위탁을 금지하는 등 장외 파생상품 등에 대한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금융당국 한 간부는 "자본시장을 통합하면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어려운 숙제를 두고도 법통과를 기다리며 허비한 시간도 상당하다"며 "법과 직결된 사항도 있고 금융당국의 업무처리 규정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법통과가 늦어지면서 시행 준비도 지연됐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뒤늦게 통과된 개정안은 그나마도 하위 법규와 충돌하는 측면이 있어 자통법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보성 한국증권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은 최근 열린 자통법 세미나에서 "자통법은 혁신과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지만, 시행령, 감독규정 등 하위법규는 일부 포지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하위 법규가 서로 다른 시스템에 기반을 둠에 따라 자통법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감독당국은 하위 법규들이 자통법의 내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초기혼란 속 여의도 금융가 변모 시작 = 국회의 늑장 처리와 금융당국의 거북이 걸음식 자통법 시행 준비로 인해 내달 4일 법 시행 직후 금융사 일선 창구에서는 다양한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통법에 따라 금융상품 판매자 자격 규정, 투자자 등급 구분, 각종 공시 규정, 불공정거래 처벌규정, 투자설명서 교부규정 등 수많은 규정이 바뀌지만 홍보기간이 짧은 데다 금융사 직원이나 투자자들이 실제로 접하는 일부 세부규정은 확정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위 실무 관계자는 "다른 부분보다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서 바뀌는 고객 등급제 등은 투자자들에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더 걸리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본격 시행이 다소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금융사와 충분히 협의해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 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통법 시행 초기 다소 혼란이 일 수 있지만 제도가 정착되면 국내 자본시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통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이런 우려들이 나오고 있지만 금융의 중심지인 서울 여의도 금융가는 내달부터 눈에 띄는 변화들을 보이게 된다.

자본시장 통합에 따라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한국선물협회 등을 합친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새로 탄생해 자통법 시대의 개막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 코스닥시장과 선물시장을 아우른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한국거래소'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자통법 시대의 새로운 금융상품 거래 현장이 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아직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지만 금융사 간 인수.합병(M&A)이나 금융사 내부 증권, 투신, 선물 등을 통합하거나 전문화 하는 시도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