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증시 하락..오바마 '호된 신고식'
다우지수, 역대 美 대통령 취임일 중 가장 크게 떨어져

버락 오바마 미국 제44대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역사적인 취임을 했지만 금융불안과 심각한 경기침체 등 그가 짊어지고 갈 경제적 난제들이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의 '변화'와 '희망'에 대한 기대가 이날 취임식과 함께 높아지고 미국인들은 축제를 즐겼지만 뉴욕증시가 급락하고 유럽증시도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실업자 급증과 소비위축, 금융기관 부실의 확산 등 암울한 경제 상황이 오바마에 대한 기대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치라는 현실에 들어선 오바마가 어떤 해법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풀어갈지 관심이 쏠린다.

◇ 美.유럽 증시 하락 = 이날 뉴욕증시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300포인트 넘게 떨어져 8,000선이 무너지는 등 급락세를 나타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32.13포인트(4.01%) 떨어진 7,949.09로 마감됐다.

다우지수가 8,000선 밑으로 떨어진 채 마감된 것은 작년 11월20일 이후 처음으로, 이날 다우지수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취임일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88.47포인트(5.79%) 떨어진 1,440.86으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44.90포인트(5.28%) 내린 805.22로 각각 거래를 마쳤다.

이날 뉴욕증시는 작년 11월4일 오바마가 당선될 때 다우 지수가 3% 넘게 오르는 등 급등세로 화답했던 것과는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이제 어두운 현실과의 괴리 속에 빠르게 식는 듯한 모습이다.

다우지수는 작년 11월4일 이후 이날까지 17.4% 하락한 상태다.

유럽의 주요국 증시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 기대로 한때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금융위기와 기업 실적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하락세로 마감했다.

이날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 100지수는 0.42% 하락한 4,091.40으로 거래를 마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의 DAX지수는 1.77% 떨어진 4,239.85, 파리 증권거래소의 CAC 지수는 2.15% 급락한 2,925.28로 장을 마쳤다.

특히 범유럽 다우존스 스톡스 600지수는 경제 침체 심화로 기업 실적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 금융불안 재점화 양상 = 이날 미국과 유럽증시를 지배한 것은 금융기관의 부실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따른 불안감이었다.

작년말 최고조에 달했던 금융위기 공포가 재점화되는 듯한 양상이다.

씨티그룹이 작년 4분기에 부실자산 상각 등으로 82억9천만달러의 순손실을 내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메릴린치를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4분기에 18억달러의 손실로 17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내면서 정부로부터 200억달러의 자금을 추가 지원받기로 하는 등 금융기관의 부실 확산과 추가 자금 필요성에 대한 우려는 다시 커지고 있다.

이날도 대형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채권관련 미실현 손실이 작년 9월말 33억달러에서 12월말 63억달러로 약 2배에 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50% 넘는 폭락세를 보였고 BOA와 웰스파고도 추가적인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는 애널리스트의 분석이 제기되면서 20% 넘는 급락세로 마감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날 두바이에서의 강연에서 신용위기로 인한 미국의 금융 손실이 3조6천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면서 씨티와 BOA, 여타 은행들의 현 상황은 시스템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금융불안 확산에 따라 영국 정부가 전날 은행의 막대한 손실에 대비해 은행의 부실채권 등을 보장키로 하는 2단계 금융구제안을 발표했고, 미 정부도 지난해 마련한 구제금융책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일소할 2단계 금융구제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난제 산적 =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정부가 과감하고 신속한 행동에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함께 성장을 위한 새로운 토대 마련을 위해 행동에 나설 것임을 다짐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도로와 교량, 전력공급망, 디지털 회선 구축 등으로 대표되는 인프라 건설, 과학기술의 진흥과 보건의료의 질적 향상, 풍력과 태양광, 지열 등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 확대 등을 예로 들어 취임후 실행에 옮길 경기부양책의 골격을 재차 설명했다.

오바마 정부가 내놓을 경기부양책은 어려운 경제상황에 맞춰 액수가 갈수록 커져 2년간 8천250억달러 규모까지 이르고 있다.

오바마가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 물려받은 경제 현실은 가혹하다.

경영사정이 어려워진 기업들의 감원 한파로 실업률은 작년 12월에 7.2%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고 연말에는 8%대까지로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소비위축도 심각해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매판매액은 전월에 비해 2.7% 감소하면서 6개월 연속 하락이라는 역대 가장 긴 감소 행진을 했다.

소비위축은 상품 구매 감소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와 이로 인한 감원으로 가계사정이 악화돼 소비를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경기침체의 골이 깊을 것임을 예상케 하고 있다.

쓰러지는 기업들도 잇따라 북미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노텔 네트웍스가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작년말 파산보호를 신청했던 미국 2위의 전자제품 유통업체 서킷시티는 청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제너럴모터스(GM) 등 위기에 처한 자동차사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오바마는 경기부양책과 함께 4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해법이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평가되는 힘든 경제 현실에서 바로 통할지는 미지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불충분하다며 그의 말과 실제 계획에는 큰 격차가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한 엄청나게 늘어나는 미국의 재정적자도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크다.

미 의회예산국이 이번 회계연도에만 1조2천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예상하는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는 오바마가 추진코자 하는 정부 지출 확대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경제문제를 비롯해 오바마가 내건 광범위한 공약들이 재정적자로 실행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