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은 다 했다. "임기를 1년도 못 채우고 물러나는데도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의 아이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얼굴은 어둡지 않다. 자신이 직접 설계한 경제개혁 과제들을 어느 정도 실행에 옮겼고 절체절명의 금융위기도 넘어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서운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금융위기와 맞선 승부사

한 · 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성사시킴으로써 국가 부도에 대한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킨 것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미국의 '달러 우산' 아래 들어가는 것은 외화 유동성 부족 사태를 해결할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승부수였다.

한 · 미 통화 스와프를 강 장관의 최대 성과로 꼽는 이유는 강 장관 스스로가 이 게임의 '플레이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정부는 물론이고 한국은행 실무자들까지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고개를 저을 때 "야인 생활을 10년 해보니까 세상에 안 되는 일이란 건 없더라"면서 우격다짐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가 열린 지난해 10월엔 직접 미국으로 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을 쫓아다녔다.

사실 강 장관은 장관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장 시절부터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던 인물이다. 대통령 당선인 보고와 대외 강연에서 수차례 '대외 불안 요소 차단'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단기 외채가 급증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하는 등 모든 지표가 외환위기 직전 상황과 비슷하게 돌아간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 과정에서 '고환율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이명박식 경제개혁 "해야 할 건 다했다"

'부자와 재벌을 위하는 정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명박식 경제개혁을 고스란히 실천했다. 감세와 조세제도 합리화를 기치로 사상 최대 규모의 세제 개편을 단행했다. 주요 세목 전부를,그것도 뼈대격인 과세구간과 세율을 크게 바꿨다. 역대 장관들이 세제실 의견을 가급적 존중했던 것과는 달리 세부 사항 하나하나까지도 자신이 직접 챙겼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장관이 직접 만들었다"는 후문까지 나올 정도였다.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을 모두 내려 14조원 규모의 감세를 단행했다. 측근들조차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며 만류했던 상속 · 증여세율 인하 방안도 추진했다. 국회에서 보류됐지만 "별 실익은 없지만 왜곡된 세제를 바로잡는다는 새 정부의 철학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상 초유의 유가환급금 제도도 도입했다. 소득이 일정 규모 이하인 근로자에게 6만~24만원을 현금으로 주는 사업으로 고유가 극복과 소득 재분배,경기 진작 효과를 한꺼번에 노린 다목적 카드였다. 총 3조4000억원 규모로 단일 대책,단일 사업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 사업 역시 실무자가 아니라 강 장관이 직접 설계한 것이다.

◆두터운 MB의 신임

윤증현 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때까지는 재정부 장관으로 재직해야 한다. 따라서 공식 퇴임은 빨라야 보름,길게는 한 달가량 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퇴임 후 거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대통령의 신임이 여전한 만큼 이 대통령이 언제든 불러 상의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힐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강 장관은 미국 일본 중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에 기여한 공을 높이 평가받았으나 장관 스스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사의를 밝혔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의 일환으로 보인다.

강 장관이 일단 2선으로 물러났다가 머지 않은 시기에 현장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6월께로 예상되는 청와대 비서진 개편 때 대통령실장으로 중용될 것 같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