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팀 = 정부의 경제사령탑 자리를 대학 동기인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에게 넘겨주고 물러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누가 뭐래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인 MB 노믹스의 상징이다.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꿰뚫고 있었던 강 장관은 취임 이후 경제정책을 총괄하면서 각종 비난이 있을 때마다 이를 몸으로 받아냈다.

'강고집'이라는 별명처럼 소신을 굽히지않았고 경제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과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경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감세와 재정확대 등 강도높은 경기부양책을 입안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다.

◇ 7.4.7 집착하다 인기잃어
강 장관의 인기 하락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정부의 장기 비전인 7.4.7(연간 7% 경제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었다.

이미 전 정권 말기부터 경기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졌지만 강 장관은 7% 성장에 연연하다가 경제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했으며, 작년 9월 금융대란을 맞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강만수 장관이 정치권 및 시장의 신뢰를 잃은데는 잦은 말 실수도 크게 작용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금융위기와 관련 "위기는 없다" "무리없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상황이 악화되자 "잘못 관리하면 경제위기로 갈 상황"이라고 뒤집어 시장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헌법재판소와 접촉했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정권 출범 초기 환율이 너무 낮으면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고환율을 유도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강 장관은 "고환율을 유도한 바 없다"고 부인했지만, 반대자들은 정부가 성장률을 의식해 환율 상승을 용인했고 이는 국제유가 급등과 맞물려 국내 물가를 밀어올리는 바람에 경제가 정도 이상으로 꼬이게 됐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최중경 재정부 차관이 경질되자 최 차관이 강 장관을 대신해 희생양이 됐다는 이른바 '대리경질'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세금 감면 또한 '부자 감세'라는 공격을 받았다.

유가환급금 지급 등 서민을 위한 감세도 많았지만 법인세와 종부세 등에 대해서는 재벌 기업과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 정책이라는 지적이었다.

◇ 금융위기 정면 돌파
강 장관은 시장과 야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뚝심과 추진력을 보였다.

작년 9월 금융불안이 시작되면서 경제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된 상황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법안과 재정 지출 확대를 성사시켰다.

신구 정권 간 자존심 대결로 치달은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을 여당의 일부 반발 속에서 뚝심으로 밀어붙인 것도 강 장관이었다.

종부세 완화 공방 때 나온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대못을 박으면 안되고 부자들에게는 대못을 박아도 괜찮은 것이냐"는 그의 발언은 시중에 회자됐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은 원칙론자였기에 이런 정책이 가능했다는 평가도 낳았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경제 상황 악화로 대통령에게 쏠릴 수 있는 모든 비판을 온 몸으로 막는 방패막이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국제무대에서 발로 뛰면서 일궈낸 공로는 무시하기 어렵다.

그는 작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긴급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금융위기에 따른 정책공조에 신흥시장국들도 포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노력은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이어지면서 환율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과거 왕조시대를 포함해 역대 재무책임자로서 가장 돈을 많이 써 본 사람에 속할 것이다.

원 없이 돈을 써본 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유가환급금을 주로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지만 녹색 성장, 공공부문 선진화, 규제 완화 등 현 정부의 핵심정책을 조율하고 세제개편, 재정지출 확대 등을 이끈 그의 노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대통령 신뢰 여전
이 대통령이 강 장관을 각별히 신임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강 장관은 대통령과 같은 소망교회를 다니면서 인연을 맺은 이래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시절에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시장의 핵심 정책인 청계천 복원과 시내버스 체계 개편을 이끌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캠프의 경제정책을 모두 디자인하는 등 앞날이 불투명하던 시절부터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던 사이다.

이번 정부에선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로서 밑그림을 그리고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도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대통령과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라기보다 동반자적 관계에 가까운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이 같은 관계를 반영, 지난해 7월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폭등에 환율상승까지 겹치면서 장관 교체요구가 빗발쳤지만 대통령은 그를 신뢰했고 이후에도 헌재 재판관 접촉 파문 등으로 강 장관에 대한 공격이 비등했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번 강 장관의 교체는 '문책'성이라기 보다 경제 현실과 경제팀에 대해 비등하는 불만을 잠재우고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한다.

강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에 재앙이 닥치면 굿을 하고 나라에 가뭄이 들면 임금이 나서서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제사에는 희생양이 필요하고 이번 개각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 이번 개각에 포함될 것임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강 장관이 대통령의 가장 아끼는 참모인만큼 장관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그의 영향력은 일정부분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