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삼성이 주요 계열사 사장의 절반 가까이를 교체하는 대규모 정기인사를 단행했다.50대 중반의 부사장급을 대거 승진켰다.구조조정에 능한 재무전무가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당초 중폭으로 예상됐던 인사의 규모가 커진 것은 삼성이 느끼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조직을 가볍고 기민하게 재정비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사세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 안팍에서는 이번 인사를 ‘제2의 신경영 선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조직 재정비를 선언했던 ‘신경영’에 버금갈 만큼 변화에 대한 주문이 강력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평이다.

50대 중반 사장 대거 전진 배치
이번 정기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젊은 부사장급을 중용했다는 것이다.△윤순봉 삼성 업무지원실 부사장(삼성석유화학 사장·56년 2월) △서준희 삼성증권 부사장(에스원 사장·54년 2월) △최주현 삼성코닝 부사장(삼성에버랜드·사장 54년 1월) △박오규 삼성토탈 부사장(삼성BP화학 사장·53년 9월) △황 백 제일모직 부사장(제일모직 사장·52년 11월) △장충기 삼성물산 부사장(브랜드관리위원장·54년 1월) 등이 사장 타이틀을 달게 됐다.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서는 ‘연륜’보다는 ‘패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삼성 관계자는 “60대 이상 사장들이 대거 용퇴하면서 그 자리를 젊은 50대 중반 부사장들이 채우게 됐다”며 “이들이 삼성 계열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 전문가 출신 많아
사장으로 임명된 인사 중에는 재무전무가들이 많다.특히 4개 회사 CEO(최고경영자)가 모두 교체된 화학계열에 재무전문가가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삼성토탈과 삼성정밀화학에는 금융계열사 대표들이 수평 이동했다.삼성토탈은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50년 4월)이 삼성정밀화학은 배호원 전 삼성증권 사장(50년 1월)이 각각 맡게됐다.삼성석유화학에는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으로 당초 금융계열사 사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점쳐졌던 윤순봉 삼성 업무지원실 부사장이 배치됐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석유화학의 경우 6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토탈과 BP화학도 주력제품가 하락으로 사업수익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며 “사업 구조조정을 노리고 재무 전문가들을 화학계열사에 전면 배치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슬림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가장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진 곳은 삼성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다.△반도체 △LCD △디지털미디어 △정보통신 △경영지원 등으로 운영하고 있는 5대 총괄조직을 부품과 완제품 로 이원화해 운영하기로 했다.부품은 반도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던 이윤우 부회장이 직접 챙긴다.완제품은 TV와 휴대폰 분야 사장을 차례로 역임했던 최지성 사장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박종우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52년 7월)과 이상완 삼성전자 LCD총괄 사장(50년 3월)은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박 사장은 삼성전기 사장으로 이 사장은 삼성종합기술원 사장으로 각각 이동하게 됐다.

삼성 관계자는 “최대한 조직을 가볍게 운영한다는 것이 이번 인사와 조직개편의 핵심”이라며 “슬림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인사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경영지원 분야는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현장 사업으로 내려보낼 방침이다.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된 것.CFO(최고 재무책임자)로 삼성의 안살림을 맡아왔던 최도석 경영지원총괄 사장(49년 5월)은 삼성카드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회사 관계자는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을만큼 관리 기능을 중시했던 삼성전자가 경영지원총괄을 해체해 각 사업본부로 편입치킨 것은 개별 사업단위의 경쟁력을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기 위해서”리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