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작은 결함도 적극대처 신뢰쌓아, 상생의 정신으로 勞使힘모아야

현대차가 오랜만에 희소식을 전해왔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고 있는 '북미국제오토쇼 2009'에서 '제네시스'가 자동차분야 최고 전문가 50명이 투표로 선정한 '북미 올해의 차'로 뽑혔다는 것이다. 전년도 북미지역에 출시된 차량 가운데 단 1개 모델만 선정되는 데다 렉서스 인피니티 같은 일본 럭셔리 브랜드도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제네시스는 미국 소비자전문지 컨슈머리포트(2월호)에 의해서도 대형승용차 부문 최고 모델로 선정됐다.

대견한 일이다. 제네시스가 이런 성과를 올린 것은 애초부터 북미시장을 겨냥해 모델을 개발한 데다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경쟁모델의 절반가량에 불과한 점 등이 좋은 평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전역에서 순회 시승행사를 실시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점 등도 우호적 여론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두 번의 이벤트에서 연속으로 렉서스를 제쳤지만 승부는 지금부터다. 렉서스 브랜드의 파워는 보통 막강한 게 아니다. 세계화 문제를 다룬 책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세계화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렉서스이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의 차로 등장하는 것도 렉서스다. 자동차의 대표 브랜드로 이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고 보면 그야말로 험난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렉서스 또한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각고의 과정을 거쳤다. 렉서스 신화의 주인공으로 미국도요타 사장을 지낸 이시자카 요시오씨(현 도요타자동차 상담역)가 지난해 내놓은 책 '도요타 판매방식'에는 그런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1989년 미국시장에 투입된 렉서스는 초창기부터 선풍을 일으켰고 5년 만에 초기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초창기 렉서스는 최고급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과 소비자 신뢰 구축에 최대 역점을 뒀다. 모든 딜러를 컴퓨터 망으로 연결해 판매량 가격 판매조건 등을 일일이 관리하면서 혹시라도 나올 수 있는 덤핑판매를 막았다. 또 통신위성을 이용해 일본 도요타 본사와 연결되는 쌍방향 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속도면에서도 한 차원 다른 서비스를 선보였다.

자동차에 이상이 발견되면 일본 본사에 그 내용을 화상으로 보내고, 대처 방법을 다시 화상으로 받아 신속히 대응해나갔다. 당시로서는 획기적 발상이다.

도요타의 노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리콜 사건이다. 최초 모델 LS400은 발매 직후 3건의 클레임을 받았다. 후면 정지 램프의 케이스가 열에 의해 변형됐다거나 배터리 위치가 다소 변했다는 등의 사소한 내용이었지만 도요타는 이를 공표하고 리콜에 나섰다. 발매 3개월 8000여대가 팔렸을 때의 일이다. 구매자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해 자동차를 회수하고 수리가 끝나면 깨끗이 세차한 후 기름을 가득 채워 돌려줬다. 알래스카에 살던 고객의 경우엔 경비행기를 타고 자택까지 찾아가 부품을 교체해줬다고 한다. 이시자카씨는 렉서스가 확실한 기반을 굳힌 것은 이 리콜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술회한다. 렉서스는 사소한 문제에도 리콜을 실시하는 등 고객을 최우선시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제네시스가 렉서스의 아성에 도전하려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더구나 제네시스는 렉서스에 비해 20년가량이나 뒤늦게 참여한 상황이고 보면 전사적 힘을 결집해 필사의 각오로 나서도 부족할 판이다. 마침 세계자동차 업계가 대혼란기에 접어든 지금은 어찌 보면 둘도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고질병인 노사갈등을 극복하고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제네시스를 한국인의 자부심이 될 만한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키워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