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원가량의 자산을 보유한 김모(64) 씨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고 30대의 미혼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주려고 부동산업체를 찾아다니고 있다.

김 씨는 만기 1년짜리 정기예금에 넣어둔 현금도 언제든지 빼내 투자할 수 있게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 옮겨놨다.

작년 하반기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한 이후 증시를 떠났던 `큰 손'으로 불리는 투자자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반면 정모(38.여) 씨는 최근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하는 바람에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내달 초 만기가 돌아오는 3천만 원짜리 적금을 깼다.

경기 불황의 한파가 몰아치면서 이처럼 고액 자산가와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의 희비가 엇갈리며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 계층간 양극화 심화

14일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통계청 등에 따르면 경기 부진과 고용 불안 등으로 가계의 소득은 갈수록 줄어들고 빚 상환 부담은 커지고 있다.

특히 중산층 이하의 생활고가 가중되고 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작년 1분기 1.8%에서 2분기 2.6%로 커졌다가 3분기에 마이너스 2.4%로 돌아섰다.

작년 4분기부터 경기가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접어든 점을 고려할 때 실질임금은 더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가구의 월평균 가계수지(소득-지출)를 보면 소득 하위 20% 계층은 적자 금액이 2007년 3분기 31만2천 원에서 2008년 3분기 32만2천 원으로 커졌다.

반면 상위 20% 계층은 같은 기간 흑자 금액이 201만2천원에서 235만4천 원으로 늘어났다.

소득 하위 30% 계층의 적자가구 비율은 49.5%에서 50.7%로 증가한 반면 상위 30% 계층의 적자가구 비율은 13.6%에서 13.1%로 오히려 줄었다.

서민들은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고소득층은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률을 보면 연소득 2천만~5천만 원의 가계는 작년 6월 말 현재 23%로 연소득 8천만~1억 원인 가계의 16.2%보다 월등히 높다.

이 부담률은 원리금 상환액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 서민 생활고 가중

서울 상계동에 사는 이모(40.여) 씨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편의 수입이 줄어들어 초등학생인 아들(10)과 딸(8)의 학원비가 모자라자 버티다 못해 결국 은행에서 2천만 원 한도의 마이너스 대출을 받았다.

경기침체로 자영업자가 찬바람을 맞고 있고 중소기업의 부도도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씨 처럼 생활고에 빠지는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는 그 어느 때보다 경기가 나쁘고 기업 구조조정도 본격화되면서 서민들에게는 시련의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개인 투자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고점을 찍은 작년 5월16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이 순매수한 상위 20개 종목의 주가는 평균 57.9% 급락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각각 순매수한 상위 20개 종목의 하락률이 각각 25.8%, 28.7% 하락한 것과 비교해 낙폭이 2배에 달했다.

주가 폭락에 큰 손실을 본 `개미'들이 떠나는 사이 `큰 손'들은 저가 매수의 기회로 판단하고 투자에 나서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신재범 프라이빗뱅킹(PB)팀장은 "작년 말을 전후해 주식형 펀드나 기존 주식 투자분을 환매해 직접 투자에 나서는 고액 자산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부자들 부동산에 눈독

50대의 박모 씨는 최근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놓고 고민하다가 부동산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50억~100억 원짜리 상가를 사려고 부동산업체를 다니면서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

김모(61) 씨는 최근 가격이 내려간 서울 강남지역의 오피스텔 1채를 사서 자녀에게 증여했다.

부자들에게는 부동산경기 불황이 오히려 재산 증식과 증여의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행의 분당지역 강 모 PB팀장은 "부동산 가격이 과거보다 많이 내려갔으나 지금이 바닥이냐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큰손들은 상황을 좀더 지켜보다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우리은행 박승안 PB팀장은 "일부 부유층이 최근 부동산 값 하락기를 이용해 더 큰 건물을 사거나 비강남에서 강남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충분한 현금 유동성이 있거나 기존 건물을 팔아 자금을 확보할 능력이 있는 부유층들은 지금이 바닥이 아닌 무릎 정도로 생각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보고 신중하게 투자를 하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경매시장에는 싼값에 부동산을 잡으려는 여유자금이 몰리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달 들어 12일까지 서울지역 아파트(주상복합아파트 포함) 경매의 평균 응찰자는 7.4명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2.2명 늘었다.

경쟁률이 50대 1을 넘는 경매 물건도 속출하고 있다.

지지옥션 관계자는 "서울지역 아파트의 낙찰가율이 2001년부터 집계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이에 따라 여유자금으로 아파트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