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에서 연 매출 100억원대의 제약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윤모씨(64)는 최근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가액의 50%를 증여세로 내야 하는 문제로 언제 어떻게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줘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지만,이 문제가 해결돼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한 은행의 가업 승계 컨설팅 서비스였다. 세무사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은행의 컨설턴트들은 회사의 지분 구조와 자산가치 등을 분석,약 14억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경영권 승계 로드맵을 만들고 세금납부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까지 제시해 줬다.

◆중소기업 승계 컨설팅 2배 증가

창업주가 2세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가업 승계를 위한 은행들의 컨설팅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주식가치 하락 등으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금 부담도 줄고 있어 이에 관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윤용운 기업은행 컨설팅센터 차장은 "자산가치 하락이 가업을 물려줘야 하는 중소기업인들에게는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며 "관련 컨설팅 건수가 1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기업은행은 2005년부터 9명의 전문 인력으로 가업승계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상속세와 증여세의 최고 80%,최대 3억원을 연 7~9%의 금리로 대출해 주고 있다. 담보가 있다면 최대 20억원까지도 대출이 가능하다. 가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자는 최대 3억원을 운영자금으로 대출받을 수도 있다.

국민은행도 지난 7일 가업 승계 컨설팅반을 신설하고 그동안 기업금융지점과 PB센터 등을 통해 이뤄지던 가업 승계 상담 서비스를 확대했다. 컨설팅반은 기업을 직접 방문해 △주식과 사업용 자산의 후계자 배분 방안 △승계 방법 및 시기에 관한 시나리오 검토 △후계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경영 교육 등 체계적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국민은행은 또 가업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대출상품을 이달 안에 선보일 계획이다.

신한 우리 하나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전담 팀을 운영하면서 법률 및 세무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승계작업 5년 이상 준비해야

전문가들은 가업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에 걸쳐 승계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봉현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상속 재산가액이 30억원을 넘어 최고 세율인 50%를 적용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몇 년에 걸쳐 나눠서 증여하게 되면 낮은 세율에 세금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합법적으로 회사의 가치를 낮춰 세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장기 채권 중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대손상각을 하면 회사의 자산가치를 낮출 수 있다. 또 임직원에게 줄 퇴직금에 대해 퇴직급여 충당금을 쌓는 대신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연금 가입액에 대해 100%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유리하다.

이상길 신한은행 기업컨설팅팀 부팀장은 "앞으로 1년 이상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당분간 주식 가격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을 감안하면 1~2년은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속세 세율 인하는 무산

올해부터 가업을 잇는 기업의 경우 상속세 공제율이 상속 재산가액의 20%에서 40%로 높아지고 공제 한도가 기존 3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늘어나 중소기업인들이 상속 과정에서 져야 하는 세 부담이 줄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요구하는 상속세와 증여세 세율 인하는 무산돼 은퇴 시기에 이른 중소기업 1세대들이 후계 고민을 완전히 떨쳐버리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속세 및 증여세 세율 인하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독일은 지난해 12월 상속세 부담을 완화한 새로운 세법을 연방의회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일본은 비상장 중소기업의 대주주가 주식을 자녀에게 상속한 경우 과세표준액의 80%를 줄여주는 내용의 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5~10년 안에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승계 문제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상속세와 증여세의 세율을 낮추고 과세 감면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