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ㆍ구제금융 등 겹쳐 수요 급증

지난해 로비업계 수입 30억달러 넘을 듯

워싱턴에 있는 미국 1위 로비업체인 패튼 보그스의 토머스 보그스 회장은 요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지난달 20일 크라이슬러가 정부로부터 다시 4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내도록 도우면서 상당한 보수를 챙겼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미 정부가 당시로선 사상 최대였던 15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크라이슬러에 지원토록 뛰었던 주요 로비스트 중 한 명이다.

미 월스트리트(금융가)와 메인스트리트(자동차 등 실물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로비업체와 로비스트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 K스트리트엔 불황은 남의 얘기다. 올해는 8년 만에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서고,새 의회도 열려 로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총 7000억달러의 금융권 구제금융 중 남은 3500억달러와 최소 7750억달러에 달하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 자금을 타내려는 금융사와 기업들이 줄을 서면서 로비스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9 · 11 테러 직후 의사당 건물 계단을 맨 먼저 뛰어오른 사람이 항공사 로비스트였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로비산업이 호황이었던 2001년과 비슷하다.

K스트리트에 대형 일감이 줄줄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10월 초 미 재무부가 7000억달러의 금융권 구제금융을 추진하자 이를 지원받으려는 은행들이 패튼 보그스,애킨 검프,K 앤드 L,슈리버 앤드 제이콥슨,알스톤 앤드 버드 등 유수 로비업체들의 문을 두드렸다. 로비스트를 고용하지 않던 암박파이낸셜그룹도 K스트리트 로비스트 2명을 고용했다. 로비업체들은 너도나도 정부와 의회 동향을 파악해 정보를 제공하는 '금융 구제숍'을 차리기 바빴다. 알스톤 앤드 버드는 밥 돌 전 상원의원과 톰 대슐 전 상원의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어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마저 자금난에 빠져 정부와 의회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보그스 회장과 같은 전문 로비스트들은 물을 만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최소 7750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월가,의료보험 분야 등에 대한 각종 개혁을 선언한 것도 K스트리트에 군침을 돌게 하고 있다.

로비활동 감시단체인 '센터 포 리스폰시브 폴리틱스'의 매시 리치 대변인은 "정부가 수천억달러를 뿌리는 시대에 진입했다"면서 "이 돈을 경쟁적으로 받아가려는 고객들을 지원하기 위해 로비스트들이 줄을 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철강업체,환경보호주의자,그린 에너지업체 등은 자신들을 지원해주면 경기부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로 로비전을 전개하고 있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무려 4050억달러가 필요한 80개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당선인이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향후 10년간 1500억달러를 태양열 풍력 등 그린 에너지산업 육성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이후 관련 업체들의 로비스트 고용은 폭발적이다. 2006년 '그린 로비스트'를 고용한 업체가 모두 36개사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300개사가 넘었다.

'센터 포 리스폰시브 폴리틱스'는 지난해 1~9월 로비업계가 미 의회에 신고한 총 수입액이 24억1000만달러에 달했다고 전했다. 지난 한 해로는 3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1998년 14억50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같은 기간 로비비용을 지출한 고객으로는 미 상공회의소가 4억2700만달러로 최대였으며,미국 의료협회가 1억9400만달러로 두 번째였다. 기업 중에서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1억78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록히드마틴 1억1000만달러 △엑슨모빌 9900만달러 △보잉 9800만달러 △프레디맥 9600만달러 △GM 9500만달러 △포드와 패니메이가 각각 8000만달러였다.

지난해 정부에 공식 등록한 로비스트 수는 1만6000여명으로 2001년에 비해 32% 증가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