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초순.구자신 성광전자 사장(현 쿠쿠홈시스 회장)은 중대 결단을 내려야했다. 대기업 가전사로부터 납품 중단 통보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난 때였다. 1978년 창립 이래 이 회사에 거의 전량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공급해왔던만큼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구 사장은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임금 일부를 자진반납하겠다는 임직원의 결의에 힘입어 정면돌파를 결심했다.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독자 브랜드를 단 밥솥을 출시한다는 승부수를 띄웠다. 구 사장은 품질을 개선한 전기압력밥솥을 내놓으면서 98년 한해동안 당시 20억원이라는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부어 쿠쿠(CUCKOO)란 신설 브랜드를 알려 오늘의 전기밥솥시장 1위 업체로 키워냈다.

외환위기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전기밥솥에서 정상의 기업으로 올라선,이른바 '쿠쿠신화'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새삼 조명 받고있다. 무엇보다 삼성 그룹에서 쿠쿠홈시스의 위기대응 전략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지난달 24일 열린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위기대응 경영전략 벤치마킹'이란 강연을 통해 IBM,도요타,GE 등과 함께 쿠쿠홈시스를 모범사례로 꼽았다. 이 연구소는 이에 앞서 지난 달 10일 '불황기의 기업대응전략'이라는 보고서에서도 쿠쿠홈시스를 벤치마킹 사례로 거론했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불황기는 경쟁사들이 긴축경영에 치중하기 때문에 호황기보다 저비용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며 "쿠쿠홈시스가 어려운 시절에 과감한 돌파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높이 평가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성광전자는 1998년 '쿠쿠(CUCKOO)'라는 브랜드를 확정한뒤 2000년까지 3년간 광고비로만 50억원을 투입했다. 마케팅 팀을 신설하고 홍보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내부 체질개선에도 나섰다. 대기업 OEM에 주력했던 터라 마케팅이라곤 해보지도 않았던 성광전자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당시 구자신 사장은 "똑같은 펀치를 날리더라도 상대가 약해졌을 때의 한 방의 위력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효과가 훨씬 크다"고 역설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불황기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내보내자 소비자들로부터 '견실한 회사'라는 반응을 얻었다. 이후 용산전자상가,세운상가 등 전국의 유통 도소매업체에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전기밥솥 밖에 없던 시절인 1993년부터 가마솥밥의 원리를 응용한 전기압력밥솥을 개발해온 터라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브랜드 출시 후 1년만인 1999년 성광전자는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02년에는 오늘의 사명으로 바꾼 쿠쿠홈시스는 현재 전기밥솥 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른다. 한때 밥솥 종주국이라 일컬어지던 일본에까지 제품을 수출한다.

쿠쿠신화의 비결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교과서적인 경영혁신으로 요약된다. 불황기를 맞아 역발상 전략으로 난세를 극복하는 '변화경영(Change Management)'의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특히 쿠쿠홈시스가 위기를 기회를 바꿀 수 있었던 비결로 '품질'을 빼놓을 수 없다. 구본학 대표는 "아무리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했더라도 품질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1회성 효과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라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웃이나 친지의 권유로 쿠쿠 밥솥을 구매했다는 설문결과가 가장 높다"고 강조했다. 구 대표는 또 "창립 이래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없었다"며 "외환위기 때 단 1명의 구조조정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숨은 배경은 노사화합"이라고 덧붙였다.

쿠쿠홈시스는 글로벌 위기를 맞은 지금 또 한번의 역발상 전략을 통해 비상을 꿈꾸고 있다. 전기밥솥 제조업체를 넘어 음식물처리기,가습기,청소기 등을 아우르는 소형 분야의 종합생활가전업체로 거듭나겠다는 것.올해 상반기에는 성능이 뛰어난 음식물처리기를 내놓는등 신제품들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0년까지 소형가전업계에서 필립스나 브라운 등을 능가하는 글로벌 1위 기업이 된다는 목표를 달성할 방침이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