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에 지난해 자산가치 16% 줄어
기업들 지원도 감소 … 근로자 은퇴설계 '비상'

미국 근로자 퇴직연금제도의 꽃으로 평가돼온 '401k'가 지난해 주식시장 폭락으로 자산가치가 줄고 노후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연방정부가 고용주 역할을 떠맡아 최소한의 연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401k 자산가치는 평균 16%가량 줄었으며,주식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상품의 자산가치 감소율은 3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전문가들은 2조달러 이상의 퇴직연금이 감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직 불안감에 떨고 있는 미 근로자들은 연금 및 의료보험 등 복지 혜택마저 줄어드는 등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변동성 높고 기업들 지원도 축소

401k는 안정성 위주로 운용하는 다른 연금에 비해 주식투자 비중이 높다. 심지어 주식투자 비중이 80~90%를 넘는 근로자도 적지 않다. 경기가 좋아서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탈 때면 자산가치가 불어나지만 지난해처럼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401k 가입자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스포츠의류회사에 13년째 다니는 애니 김씨(42)는 2007년 말 11만8000달러이던 401k 연금자산이 최근 10만달러 밑으로 줄었다. 페덱스에 근무하는 엔지니어인 라파엘 가르시아씨는 "1년 새 6만달러를 잃었다"고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S&P500지수는 38.5% 하락했다. 401k의 주식 비중이 50%라면 평균 20% 가까이 자산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401k의 주식 비중은 2007년 평균 69%에서 지난해 52%로 낮아졌다.

주식시장 침체로 가뜩이나 401k 자산가치가 하락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잇따라 지원(매칭 지원)을 줄이고 있는 것도 근로자의 은퇴설계를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기업들이 비용절감 방법 중 하나로 401k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페덱스는 지난해 12월 앞으로 1년 동안 401k 지원을 중단키로 해 직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스타벅스는 올해부터 회사의 401k 퇴직연금 기여 방식을 고정비율에서 자유재량으로 전환했다. 회사가 연금 보조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스트먼코닥 모토로라 제너럴모터스(GM) 레저스인터내셔널 등도 지난해 9월 이후 지원을 잠정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기업들은 통상 근로자들이 401k에 투자하는 금액의 50~100%를 추가로 적립해주고 있다.

◆근로자 이중고

상당수 기업들이 기존 연금제도를 401k로 바꾼 상황에서 기업들이 지원을 줄이면 근로자 입장에서 은퇴설계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특히 주식투자 비중 및 가입 · 탈퇴 등 근로자 개인의 재량권이 워낙 크기 때문에 시장위험을 근로자들이 그대로 져야 한다. 기존 연금제도는 고용주가 마음대로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기 어려웠다. 연방정부가 세제 혜택을 조건으로 엄격한 규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1k는 경영이 어려워지면 언제라도 지원을 줄일 수 있다. 사실상 월급을 줄이는 것과 같다. 운용회사를 어느 곳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수익률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보스턴대 은퇴연구소의 앨리시아 먼넬 이사는 "401k는 은퇴 수입원으로서의 주된 역할을 하기에는 실패한 정책"이라며 "신뢰를 되찾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 등락에 따라 자산가치가 급변하는 것도 문제지만 근로자의 절반 정도만 혜택을 보고 있고 세금우대 조치가 고액 소득자들한테 더 유리한 점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진보센터 고문으로 있는 진 스펄링씨는 "401k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을 없애는 대신 연방정부가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에 있는 사회연구 뉴스쿨의 테레사 길라두치 교수는 "정부가 후원하는 퇴직기금을 만들어 장기 경제성장률 수준인 연 3%의 수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하면 재정 부담이 늘지 않으면서 근로자들은 안정적인 노후설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용어풀이 ]

◆401k=미국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의 401조 k항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확정기여형 기업연금제도를 말한다. 보편적인 미 근로자의 연금제도로 약 5000만명이 가입돼 있다. 1980년 처음 도입됐으며,1990년 후반부터 활성화됐다. 근로자가 월급에서 일정 비율을 떼내고 회사도 일정 비율을 지원해 펀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적립금은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한다. 투자금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계산할 때 과세표준에서 제외되며,나중에 연금을 찾아서 쓰는 시점에 과세된다. 연금을 타서 쓸 때는 사실상 근로소득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부담을 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저축액과 운용 성과에 따라 연금 수급액이 달라지는 까닭에 실적배당형 상품인 뮤추얼펀드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 1990년 이후 연평균 12.9%의 성장세를 보이며 미국 자본시장 발전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