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조선소 A사의 B과장은 최근 고향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런 얘기 꺼내기가 좀 그렇긴 한데….너 요즘 월급 안 나온다며?" 황당한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디서 그래요? 우리는 연말에 보너스까지 받았는데." B과장은 "월급에서 일괄적으로 불우이웃 성금까지 떼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미심쩍어 하는 눈치들"이라며 "중소 조선업체들이 어렵다는 얘기가 매일 터져나온 탓에 멀쩡한 업체들도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경기침체로 한계 상황에 처한 기업들이 잇따르면서 악성 루머에 시달리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감원 감봉 공장폐쇄 등 '불황형 단어'들이 루머의 단골 메뉴다.

동국제강은 지난달 31일 '브라질 세아라 스틸 공장 건설 재검토'라는 공시를 냈다. 2005년부터 몇 차례 반복해온 공시였지만 이번엔 파장이 달랐다. 일부 매체에서 '브라질 고로 건설 재검토'라는 제목을 달아 비중있는 크기로 기사를 내보낸 것.동국제강이 추진 중인 최대 해외 프로젝트가 무산될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았다.

결론은 '오보'였다. 동국제강은 2005년 브라질에 전기로를 지어 슬래브를 만드는 공장을 검토했지만,전기로 대신 고로를 짓는 쪽으로 투자 계획을 확대했다. 당연히 이전 슬래브 공장 계획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이후 관련 규정에 따라 6개월마다 '재검토'공시를 내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체가 어려우니까 당연히 대규모 투자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단한 것이 사건의 발단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국내 '빅3' 조선업체에는 조선소가 언제까지 쉬느냐는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 이 역시 원인은 경기침체.작년 하반기부터 수주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뉴스가 루머로 증폭됐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미리 받아 놓은 수주가 4년치에 달하기 때문에 야근과 특근을 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말 연초에 줄을 잇는 인사 발표에도 주변의 반응이 예년같지 않다.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없거나 비슷한 직급에 다른 사람 이름이 오르면 "잘린 것 아니냐"는 걱정을 듣는다. 최근 사장 인사 발표를 한 모기업은 이로 인해 뜻하지 않은 홍역을 치렀다. 기존 사장 외에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 또 한 명의 사장을 임명했는데 이 사실이 와전된 것.

'유동성'을 둘러싼 루머도 자주 등장한다. 특정 기업의 현금흐름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여기에 뼈가 생기고 살까지 붙어 빠르게 변형·유통된다.

'오프라인 댓글'인 셈이다. 최근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는 한 기업의 관계자는 "현금흐름이 양호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험 수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주변의 우려가 지나치다"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소문이 실제 현실이 돼 버리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