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옮겨 붙으면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대격변기를 맞고 있다. '자동차 왕국'으로 통하던 미국에서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주력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수요가 급감하자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업체를 비롯해 BMW 폭스바겐 등 유럽 업체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가 174억달러의 긴급자금을 빅3에 수혈하기로 했지만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 세계 1위인 도요타는 올해 1500억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고 혼다 역시 550억엔의 적자를 예상했다.

자동차업계의 불황은 감산과 감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미국 내 30개 공장 가동을 한 달간 중단했고 GM도 북미공장의 30%를 멈춰 세웠다. 포드도 연초부터 북미 10개 공장 문을 닫는다. 도요타는 올해 생산계획을 당초보다 95만3000대 줄인 792만대로 낮춰 잡았고 닛산은 국내외에서 27만2000대 이상을 감산할 계획이다. 미쓰비시자동차도 감산 규모를 약 11만대로 확정했다. 일본에서는 자동차업계의 감산 결정에 따라 비정규직 1만4000명가량이 해고될 전망이다. 올해 자동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6997만대)보다 4.2%가량 줄어든 6698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감산 감원 등 긴급 경영으로도 돌파구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자동차업계를 지원함으로써 대량 실직 사태를 막아보려는 각국 정부의 지원책이 잇따르면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될 조짐도 엿보인다. 캐나다는 GM 크라이슬러 자회사에 33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고,영국 정부는 금융시장 구제금융 자금 4000억파운드 중 일부를 자동차업계에 할당할 방침이다. 프랑스는 기존 차량을 폐차한 후 신차 구입시 1000유로 상당의 장려금을 준다. 중국도 치루이자동차에 100억위안을 지원하기로 했다.

빅3를 중심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재편 가능성도 커졌다.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의 세르지오 마르시온네 회장은 최근 "앞으로 2년간 자동차업계 재편이 이루어져 연간 55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거대 회사만 살아남을 것"으로 내다봤다. GM은 사브를 매물로 내놨고 포드는 볼보,크라이슬러는 닷지 지프 등의 매각을 타진 중이다.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앵 그룹은 이탈리아 피아트 그룹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빅3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불황 속에서 공격적 투자를 통해 기회를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혼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전지 양산을 위해 일본 전지 생산업체인 GS유아사코퍼레이션과 공동으로 내년 초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은 "배기가스 배출이 없는 전기차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