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주거래 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에 3200억원의 유동성 지원을 먼저 해주지 않는 한 신규 자금을 공급해 주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하이차는 은행권 대출 재개와 함께 감원,급여 삭감 등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 협력을 긴급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산은 요구를 수용할 지 여부가 불투명해 보인다. 상하이차 또는 산은에서 유동성이 시급히 지원되지 않으면 쌍용차는 1월 중 파산설이 나올 정도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 이전료 등 '미수금'부터 해결하라

산은 관계자는 25일 "쌍용차로부터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제반 사항을 검토한 결과 상하이차의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같은 방침을 쌍용차와 상하이차에도 통보했다"고 말했다.

산은에 따르면 상하이차는 그동안 자동차 개발 기술 등을 전수받은 대가로 쌍용차에 지급해야 할 대금(기술료)이 1200억원 남아 있다. 산은 관계자는 "이 돈은 쌍용차가 당연히 받아야 할 채권의 성격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또 쌍용차는 현재 중국은행(BOC)과 공상은행으로부터 각각 1000억원씩 크레딧 라인(신용공여한도)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이를 사용하려면 모회사인 상하이차의 지급보증이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산은은 보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상하이차에 지급보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침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며 "구체적인 답변 시한을 못박지는 않았지만 가급적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게 산은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산은 관계자는 "상하이차가 기술료를 지급하고 크레딧 라인에 대해 보증을 서 준다면 쌍용차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산은은 이후 신규자금 공여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만약 상하이차가 우리 요청을 거부한다면 사실상 쌍용차를 포기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고,신규 자금 공급도 검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국신용평가는 "쌍용차가 지난해 7월 2억유로 규모의 해외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등 다각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으나 최근 국내외 시장에서의 판매 급감에다 현금흐름 저하 및 금융환경 악화로 인해 운전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주주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현재 국내 금융권에선 산은이 쌍용차에 대해 2300억원의 여신을 갖고 있으며 다른 은행들은 대출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쌍용차 긴급 경영점검 나선 상하이차

상하이차는 산은 등의 요청에 따라 장쯔웨이 부회장 등이 지난 24일 밤부터 한국을 찾아 쌍용차 경영 전반에 걸쳐 실태 파악에 나선 상태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경영현황을 체크한 뒤 지식경제부,산은 등과 자금 지원 여부에 대한 협의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 관계자는 "공장부지나 시설 등을 담보로 제공해도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하이차 혼자서 쌍용차를 살리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은행 융자 재개 및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 협조가 있어야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정부 및 산은과의 협의에서 어떻게 결론날 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쌍용차는 유동성 부족 때문에 단체협상에서 노사가 합의한 주택자금 융자와 학자금 지원,퇴직금 중간 정산을 이달 들어 중단한 데 이어 당초 24일에 지급돼야 할 200억원 규모의 임직원 월급도 내년으로 지급시기를 미룬 상태다. 또 판매 부진에 대응하면서 비용 절감을 꾀하기 위해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평택 조립공장과 창원 엔진공장 등 모든 공장 가동을 내년 1월4일까지 예정으로 지난 17일부터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상하이차 자금 수혈의 키를 결국 노조가 쥘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판매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감원 등의 극약 처방이 이뤄지지 않으면 탈출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관계자는 "상하이차는 물론 은행들도 일시적인 자금 지원 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냐를 고려할 텐데 노조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올들어 3분기까지 980억원 넘는 적자를 냈고 한 해 적자 규모는 최소 1200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영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4월엔 1500억원 규모의 공모사채 만기도 돌아온다.

박준동/김수언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