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실물경제가 급속히 둔화되면서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엔화 강세로 인한 엔캐리 자금 청산도 원자재가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엔화를 차입,원자재 시장에 대거 투자한 헤지펀드들이 마진콜(추가 증거금요구)에 몰리면서 원자재 시장서 자금을 빼내고 있기 때문이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11월물은 3.36달러 하락한 배럴당 70.89달러에 마감했다. 지난 7월11일 배럴당 147.2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불과 3개월여 만에 반토막이 났다. 22일 장외시장에서도 WTI는 4% 가까이 떨어지면서 60달러대로 다시 추락했다.

19개 원자재 상품을 기초로 한 로이터 CRB지수도 278.70으로 3개월 전보다 40% 이상 급락했으며,옥수수 가격은 지난 6월 최고가의 절반에 불과한 부셸당 4.1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구리도 장중 파운드(453g)당 1.99달러를 기록,2005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2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블룸버그통신은 구리 가격이 올해 20년 만의 최대 낙폭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구리가격은 올 들어 지금까지 34% 하락,이미 1989년의 낙폭(31%)을 뛰어넘고 있다. 상품 중개업체인 MF글로벌의 에드워드 마이어 애널리스트는 "구리가격 급락은 세계 경기둔화가 (구리의 주 수요처인) 중국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게다가 엔화 강세에 따른 엔캐리(싼 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것) 청산이 일어나면서 헤지펀드들의 대규모 매도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엔화가치는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0엔 밑으로 내려가는 등 강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엔화를 빌려 원자재에 투자한 헤지펀드들이 엔화는 오르고 원자재는 급락하자 원자재 시장에서 서둘러 빠져나오기 위해 대거 매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청산이 지속될 경우 감당하기 힘든 원자재 쇼크가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CNN머니는 "지금 당장 디플레이션(Deflation)이 닥칠 것으로 보진 않지만 최근의 가격 하락은 디플레이션의 전조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제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인플레이션 공포는 사라졌지만 경기침체 가운데 자산가치는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미쓰비시의 안토니 누난 부국장은 "24일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회의에서 감산할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시장에 반영된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가 없으면 유가 하향 조정세는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