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고조.원자재값 급락… 휘청대는 중남미

중남미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디폴트(국가부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고,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연일 폭락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도 크게 떨어지면서 원유 금속 곡물 등을 주로 수출하는 중남미 국가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21일 중남미 경제가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심화로 심각한 유동성 부족 사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의 에반젤리네 하비에르 중남미 담당 연구원은 "금융위기가 이 지역의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수개월 안에 본격적인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날 미국발 금융위기가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등 중남미 국가들에 직접적으로 전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 밀접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어 미국의 충격파가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IMF는 또 유럽과 일본에 비해 중남미의 충격 속도와 규모,지속성이 더욱 클 것이라며 1년6개월 후 그 파장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이날 민간 연금펀드 국유화 추진 소식으로 증시가 11% 폭락하며 4년래 최저치로 마감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금융위기로부터 펀드 가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300억달러 규모의 민간 연금펀드를 국유화할 방침"이라며 "정부는 펀드 자금 일부를 기간산업 구축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 투자자들은 연금펀드의 소유권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며 주식을 내던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르헨티나는 2001년 950억달러 규모의 국채 상환에 실패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던 경험이 있다"며 "현재 아르헨티나는 만기까지 상환하지 못한 200억달러 규모의 국채 문제 등이 걸려있어 자금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태"라고 보도했다.

브라질에선 최근 화폐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외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이날 "금융위기 이후 외환시장에 229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는 등 환율 방어에 나섰다"고 밝혔으나 헤알화 가치는 이날도 5% 이상 폭락하며 달러당 2.23~2.24헤알에 거래됐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이달에만 18%,올 들어선 26%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융위기가 새로운 희생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곡물 및 유가 하락 등으로 수출 전선에도 타격을 받고 있는 중남미의 문제는 단기로 끝나지 않고 중장기적 침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순번의장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이날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메르코수르 특별회의를 소집했다. 룰라 대통령은 "오는 27일 브라질에서 회의를 개최해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논의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는 남미대륙 12개국이 모두 참가할 전망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