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당시의 기록인 그림이나 책을 봐도 없는 게 있다. 바로 마차다. 서부영화에서 들판을 가르는 역마차 같은 운송수단으로서 마차는 찾아볼 길이 없고 짐을 끄는 우마차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걸어다녔고 짐은 지게로 지고 날랐다. 잘못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차가 없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보고다.

여러 전쟁에서 낭패를 당하고 결국 산업화에도 뒤늦었던 것이 마차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고구려 당시엔 평양성 궁궐까지 마차길이 있었다는데 왜 이후엔 마차가 사라졌을까. 실로 '고구려 마차 실종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러가지 추측들은 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가 마차와 기술자를 모두 끌고갔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왜 마차가 갑자기 사라졌고,이후 고려와 조선 정부가 왜 마차 제작에 적극 나서지 않았을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런 사건은 누가 풀어야 할까. 역사가보다는 소설가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진실을 알고 싶지만,부분적인 진실보다는 완전한 상상이 오늘에 주는 시사점이 더욱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로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기전(神機箭)은 조선 세종 당시 개발된 세계 최초의 다연발 로켓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의 채연석 박사가 1990년대 복원에 성공했지만 이제까지는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다. 신기전의 존재와 역사적 가치는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대중들 사이에서도 의미를 갖게 됐다. 사건은 상상력이 더해질 때 큰 사건이 되고 그야말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가장 큰 문제는 매일매일 이런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까지 모두 뉴스로 알려지면서 무엇이 중요한지,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해보려는 생각도 못한 채 사람들은 끌려가고 있다. 매일 매일의 뉴스에서도 이면과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 상상력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당장 금주의 사건인 미국발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150년이 넘은 리먼 브러더스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사건인데도 자세히 보면 이전에 짐작하고 경고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나 벤 버냉키 현 의장 같은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리더들도 진단과 처방에서 역시 사후약방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칠게 말하면 모두들 아무 것도 모르고 살고,일단 일이 벌어지면 대책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수준으로까지 세상의 변화가 사람을 앞서가고 있다.

큰 사건은 위험요인도 되지만 엄청난 기회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지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세상은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이 변화의 줄기를 찾고 거기서 투자와 성장의 기회를 잡아내야 하는 사람은 현장의 직원들이 아니라 경영자 자신이다.

지난해 타계한 세계 최고의 테너 파바로티는 실제 노래 부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음악연습을 더 많이 했다고 한다. "가수라면 음악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빌려 말하면 "경영자라면 변화를 상상해낼 수 있어야 한다. " 우울한 뉴스 속에서 벅찬 희망을 찾아내는 우리 경영자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기대한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