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족) NG족(No Graduation족.졸업 유예족)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족) 토폐인(토익공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캥거루족(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이)….한참 일해야 할 나이인데도 사실상 '백수' 상태에 있는 청년층이 100만명을 넘으면서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들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람 빼고는 딱히 가진 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청년 백수가 104만4000명이라는 집계는 충격적이다. 더 큰 문제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조사 직전 4주간 기준)을 해서 실업자로 분류된 젊은이는 33만4000명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대부분은 '취업준비'(48만8000명) '그냥 쉬었음'(22만2000명)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인구 편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이 대거 사회 진출을 유보하는 가운데서도 기업의 부족 인력(5인 이상 사업체 기준)은 꾸준히 늘어,지난 4월에는 22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구직난'과 '구인난'이 병존하는 이런 상황이 왜 벌어지고 있을까.

◆기업.구직자 '눈높이'다르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구하는 기업과 일자리를 찾는 이들 사이에 눈높이가 달라서 생기는 '미스매치(miss match.불일치)'가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취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기대하는 임금과 현실임금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4년 대학 졸업자와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졸자의 희망 임금 수준(연봉 기준)은 4년제가 2095만원,전문대가 1858만원이었다. 반면 현실임금(같은해 경총 임금 조정 실태조사)은 초임 기준으로 대졸이 1783만원,전문대졸이 1546만원으로 집계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직자의 '숙련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불만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22개 회원사 인사담당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신입사원이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업무 관련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졸자는 64%,전문대졸은 63%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청년층이 공직이나 공기업 대기업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쾌적한 직장에 '입성'하기 위해 장기간 부모의 뒷받침을 받으며 '백수'로 있는 것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미스매치가 시장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눈높이 낮춰도 갈 곳이 없다

대학 진학률의 증가로 고학력 인력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노동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이다. 1982년 37.7%에 불과했던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지난해 82.8%까지 증가했다. 김영삼 정부 때 대학 설립을 허가주의에서 준칙주의(요건만 갖추면 개교할 수 있음)로 바꾸면서 대학 수와 정원이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직업관'이 바뀌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대졸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생겼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조건 젊은이들의 눈높이 탓만 할 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최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취업 문호를 넓히고,무연고 중국동포에게 방문 취업 비자를 발급해주면서 상대적으로 저임금 노동력 공급을 늘려 놓은 게 청년층 구직난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정작 청년 백수들이 눈높이를 낮춰도 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이제는 단순히 정부가 구인구직 정보를 더 찾기 쉽게 해주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지금의 대학 교육 시스템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