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더타임스 등 미국과 영국의 주요 신문들은 17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선고 사실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한국에서 재벌총수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신문들은 서울중앙지법이 이 전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를 인정했지만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편법으로 증여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가 인정됐지만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해 교도소행을 면하게 해줬다면서 검찰은 이 전 회장에게 7년형을 구형하면서 법원이 기업 총수들에 대한 관용을 종식시켜야 할 것을 주장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는 재벌들의 부패 스캔들이 정기적으로 터졌지만 징역형으로 귀결된 판결은 드물었다면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전 회장, 감옥행 면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전 회장의 집행유예 소식을 전하면서 삼성그룹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 자랑스러운 경제적 성과와 사회에 대한 지나친 영향력이라는 상반된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전 회장의 판결 내용을 전하면서 지난 1996년 뇌물 공여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사면받았던 일을 상기시켰으며, 이번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인터넷판에서 정몽구 회장의 집행유예를 거론하면서 이 전 회장에 대한 이번 판결은 재벌에 관대한 한국 법정의 태도를 재확인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판결로 이 전 회장은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고도 관대한 판결을 얻은 현대차와 SK 그룹 총수와 같은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면서 이번 판결은 그동안 부패를 조장하고 소액주주의 권리행사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들어온 재벌 모델에 대한 비판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smi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