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7일 전 세계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서방 국가들을 비난하면서 모스크바를 세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달 대통령에 취임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포럼에 참석해 "전 세계 신용경색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으며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외형적인 역할과 실제 능력 간 괴리가 바로 현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 시장이 거대하고 금융 시스템이 신뢰할 만 하다고 해도 전 세계 상품 및 금융 시장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세계 정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꼬았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글로벌 플레이어다.

세계의 운명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이해하고 있으며 소위 제국주의적 야심 때문이 아니라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데 참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 세계 식량위기와 관련, "러시아가 에너지 부문의 개발을 통해 세계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데 노력하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바이오 연료 투자와 식량가격을 올리는데 몰두해 왔다"고 지적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식량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몇몇 나라들이 농업 보호주의 정책을 취한 것은 이기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특히 그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미국 달러화 가치에 대한 투자가들의 실망에서 비롯됐다"며 "새로운 유동 자본 창출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세계 주요 금융회사 대표들과 금융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또 이날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세계 금융 중심지로, 러시아 화폐인 `루블'을 주요 결제 수단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계획을 조만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에 국제금융 센터를 설립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 등 러시아 주요 에너지 회사들은 차제에 결제대금을 달러가 아닌 루블로 받는 방향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취임 후 법치주의를 강화하고 부패를 차단하는 한편 소규모 기업의 경영환경을 개선하는 몇몇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에 자유시장 경제주의를 표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날 연설은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의 8년 통치 이후 권좌를 넘겨받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향후 어떤 경제정책을 견지할 지를 가늠할 신호탄으로 여겨지면서 서방 투자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다.

러시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8.1%에 달하는 등 에너지 수출 증가에 힘입어 고(高)성장을 구가해왔으나 최근에는 경기 과열의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가 고조돼 왔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