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1000線 회복 2년 걸릴것"

"요즘엔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갖고 있는 주식을 팔 수가 없어요."

호찌민시에 있는 베트남 최대 증권사 SSI증권 지점에서 만난 따이 방 아우씨(51)는 주가가 너무 떨어져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팔려 해도 며칠째 매수 주문이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냥 들고 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따이씨는 2000년 호찌민 증권거래소가 개장하기 전 국영기업 민영화 때부터 10여년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베테랑이지만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곳 주식 투자자들은 비나지수가 지난해 11월부터 7개월째 곤두박질쳐 60% 이상 폭락하자 주가 반등 기대를 버리고 거의 체념한 상태다.

따이씨 말대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지금은 다 팔려고 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더라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

◆환율리스크 커져 비상


문제는 증시를 포함한 금융시장이 앞으로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경기선행 지표인 주가에 이어 부동산 등 다른 자산들도 하락 조짐을 보이는 데다 무역수지 적자 확대와 치솟는 물가 때문에 현지 통화인 동화의 가치도 지난 4월부터 떨어져 달러 대비 환율이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동화 가치는 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지난 2월의 설 연휴를 지나면서 생활물가 급등과 함께 하락 조짐을 보이다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지난 3월 현지 은행 간 거래를 기준으로 달러당 1만5400동이던 동ㆍ달러 환율은 이달엔 1만6500동으로 올랐다.

두 달 사이에 동화 가치가 7.1%나 급락한 셈이다.

이곳에 나와 있는 국내 은행들은 환율 급변에 애를 먹고 있다.

베트남은 중앙은행이 환율매매 밴드를 정해주는데 실제 은행 간 거래 등 시장 환율은 이를 벗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오강묵 신한비나은행 부행장은 "환율 밴드를 벗어난 매매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들은 달러를 매매할 때 실제 환율과의 차이에 대한 리스크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지 한국 기업 돈줄 막혀

여기에 베트남 정부가 유동성 긴축 차원에서 지난 19일부터 달러 등 외화대출을 금지,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과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은행들도 동화를 구하기 힘든 마당에 달러대출까지 막히면 현지 기업들에 대한 대출 여력이 없어져 기업들로서는 자금 조달이 크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성훈 KOTRA 호찌민 무역관장은 "달러대출 금지로 필요한 자금을 한국에서 조달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은 크게 곤란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기존 달러대출의 만기가 돌아올 경우 연장이나 차환 발행이 가능한지 여부도 불명확해 현지 은행과 기업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불확실하다 보니 달러대출이 많은 기업들은 일단 "상환하고 보자"며 달러 조달에 총력을 쏟고 있다.

호찌민 인근 동나이공단에 입주해 있는 구리판매 업체인 비나메탈 김수영 사장은 "최소한 올 8월까지는 동ㆍ달러 환율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지난해 말 340만달러였던 달러대출을 180만달러로 줄였고 앞으로도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최우선 청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설픈 정책이 혼란 키워

이곳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무역적자 확대 등으로 사정이 급박해진 나머지 너무 어설프게 대책을 양산하는 바람에 되레 시장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 도입 이후 처음 겪는 위기라 당황해서인지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반시장적인 대책까지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 1월 이후 베트남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취지로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프라임레이트) 인상,12억달러를 넘는 통안채 발행 등 어설픈 유동성 긴축 대책을 내놓은 결과 은행들의 자금난이 심각해져 은행 간 하루짜리 콜금리가 연43%까지 오르기도 했다.

또 지난 2월에는 경기 과열을 방지한다며 합작은행을 포함한 로컬은행은 대출잔액을 지난해 말의 130% 이하로 제한하라는 여신 상한선을 제시해 시장과 기업들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현지 금융업체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라면 꿈도 꾸지 못할 정책들이 하루 아침에 튀어나오는 걸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무서운 생각도 들어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베트남 정부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추가 상향한 이후 연18%였던 콜금리가 14%로 떨어지는 등 일부 조치는 약발을 내고 있어 금융시장이 최악의 상황은 피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시장 정상화 단기엔 어려워

이곳 금융업체 분석가들은 금융시장이 단시일 내에 안정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비나지수가 다시 1000대로 올라서려면 최소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호찌민시에 있는 온라인 매매 선두주자인 VNDS증권의 트린 후안 부 본부장은 "베트남 증시는 젊은 시장이고 규모가 작다는 이점이 있지만 이는 동시에 단기적인 위험에 취약할 수 있다는 약점이기도 하다"며 "앞으로 2년 정도는 지나야 지수 1000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현재의 금융위기는 2~3개월이면 안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나라 3위권 증권사인 호찌민시티증권(HSC)의 CEO 요한 나이븐은 "기업이익과 밸류에이션 등을 감안할 때 전고점까지 올라 1200대로 진입하기까지는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베트남 내 최대 합작은행인 인도비나은행(IVB)의 예 펑 잔 대표는 "이번 같은 베트남 경제의 위기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면서도 "위기를 벗어난 뒤에는 당분간 경제성장률이 5~6%대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