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는 관심이 없다.오직 상품시장에만 투자하고 있다."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66)은 자신의 투자 전략을 이같이 요약했다.

짐 로저스는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해 10년간 4200%의 수익률을 올렸던 투자의 대가다.

그는 지난달 22일 한국에서 열린 한 포럼 자리에서 "주식은 1980년대 이후 많이 올라 피크에 달했지만 상품시장 활황은 2020년까지 갈 것"이라며 상품시장에 대한 핑크빛 전망을 내놨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원자재가 최고의 대체 투자 수단으로 떠올랐다.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유와 금 등 원자재 랠리가 투자자들의 눈을 뜨이게 하더니,찬밥 신세였던 곡물 시장에까지 핫머니가 쏠리고 있을 정도다.이에 따라 밀과 콩,설탕과 커피 등 상품시장 전반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원자재값 상승의 장기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중국과 인도 등 이머징 국가의 성장세다.구리의 경우 중국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 1년간 41% 치솟은 t당 8510달러(2월28일 기준)를 기록했다.현재 한국의 10분의 1 정도인 중국의 1인당 하루 석유 소비량(0.049배럴)도 머지않아 한국 못지 않은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원자재 생산과 투자에는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 부족 가능성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상품시장의 매력은 시장이 불안해질수록 더 커진다는 점이다.특히 인플레 헤지(회피) 수단으로 인기 높은 금과 백금 등 귀금속은 올 들어서만 각각 16%,40%의 급등세를 보였다.셈프라메탈의 존 캠프 분석가는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달러가 약세인 현 상황에서 상품값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며 "원유와 구리,알루미늄 등이 미국 금리 인하에 따른 달러 약세 심화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고수익,고위험 투자를 선호해온 헤지펀드들도 안전하고 단순한 상품 투자로 방향을 틀고 있다.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커피가 1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설탕이 1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것도 헤지펀드 등이 저평가된 상품 전반까지 투자를 확대하면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총 3조달러(약 2800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국부펀드 자산의 1%인 300억달러가 상품시장에 투자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모건스탠리의 상품 투자전략 책임자인 보리스 시레이어는 "국부펀드의 상품 투자는 이제 시작 단계"라며 "앞으로 더 많은 국부펀드 자금이 상품시장에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퍼스(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도 2010년까지 상품 투자를 지금보다 16배 많은 72억달러까지 늘리기로 했다.

원자재 투자 붐은 이미 하나의 장기적 추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위스덤파이낸셜의 자차리 옥스먼 수석 트레이더는 "1870년부터 주식과 상품시장의 호황은 7차례 번갈아가며 이뤄졌다"며 "최근 상품가 상승과 주가 하락은 새로운 주기의 도래를 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261%라는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JP모건의 이안 헨델슨 펀드매니저는 지난해 11월 "원자재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새로운 슈퍼 사이클에 들어섰다"며 "이는 100년 심지어 150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