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패션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임금 상승으로 생산 여건이 악화된 데다 내수 시장에서마저 '한류 특수'가 사라지고 있는 것.

내로라하는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과의 경쟁이 버거운 상황에서 중국 로컬(현지) 브랜드들의 거센 추격마저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1994년 중국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80여개의 기업이 활동하면서도 흑자를 내는 곳은 10개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이 글로벌 브랜드들의 '무한 경쟁'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난관이다.

제일모직 중국법인 관계자는 "남성 정장을 예로 들면 아르마니가 지난해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정장 한 벌 가격을 평균 2만위안에서 1만5000위안으로 내렸을 정도로 명품 브랜드들이 본격적인 '장사'에 나서고 있다"며 "고소득층을 겨냥한 국내 고가 브랜드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국내 유일의 중국 진출 신사복 브랜드인 제일모직 갤럭시(매장수 31개)의 제품 가격은 1만2000위안 수준으로 가격 면에서 아르마니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고소득층을 겨냥해 진출한 국내 굴지의 브랜드들은 갓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고급 캐주얼 브랜드인 빈폴(제일모직)과 헤지스(LG패션),여성복의 쿠아(FnC코오롱)와 시스템(한섬)이 2005~2007년 진출해 이제 겨우 5개 안팎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보다 먼저 1990년대 후반에 진출해 4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보끄레머천다이징 김영환 이사는 "중국 패션 시장은 매년 약 20%씩 성장하고 있지만 웬만한 명품 브랜드들은 모두 중국에 들어와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의 '자라' 등 패스트 패션(fast fashionㆍ명품 스타일을 재빨리 모방해 값싼 가격에 내놓는 상품) 브랜드들이 지난해 일제히 중국에 상륙한 것도 위협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랜드,더베이직하우스 등 중ㆍ저가 시장의 국내 브랜드들이 자라,망고,CNA처럼 이미 상품 경쟁력에서 검증을 마친 글로벌 브랜드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도전 역시 거세다. 2004년 상하이 고급 백화점인 빠바이빤에 1호점을 내고 110개 매장을 운영 중인 EXR가 똑같은 컨셉트를 모방한 '호즈'라는 중국 브랜드에 공격 당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호즈는 EXR 대비 30%가량 저렴한 점을 무기로 EXR 바로 옆에 매장을 잇따라 내고 있다.

EXR 관계자는 "짝퉁 판정을 받으려면 2~3년이 걸리는 데다 현장 단속을 할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1994년 가장 먼저 중국 시장에 진출해 티니위니,스코필드,로엠 등 15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 이랜드 역시 '짝퉁' 브랜드들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이사는 "짝퉁이 아니더라도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디자인 경쟁력이 한국 수준에 거의 근접해 가고 있다"며 "중국의 의류 산업 구조가 단순 섬유 제조에서 패션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달 밀라노에서 열린 남성 정장 최대 전시회인 프레타 포르테에서 현지 관계자들이 아시아인을 보면 '중국에서 왔냐'고 물을 정도로 중국 디자이너들이 많았다"며 "어차피 한국도 글로벌 패션 트렌드를 좇아가는 형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디자인 격차를 찾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상품력을 좇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그렇다고 로컬 브랜드들의 막강한 가격,유통 경쟁력을 이기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 중간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중국에 진출한 국내 브랜드들의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