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허브경쟁 뛰어든 카타르] (上) 새로운 금융중심지 도약
카타르 수도인 도하 국제공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선 뒤 웨스트베이쪽으로 가다보면 내륙쪽으로 들어온 바다 건너편에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4~5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이곳의 고층 빌딩들이 이제는 제법 근사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신시가지로 막상 들어서보니 공사장이 따로 없었다.

공사현장의 펜스로 인도 곳곳이 끊어져 있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덤프트럭이 쉴새없이 넘나드는 길거리와 터파기 공사장,반쯤 올라간 골조물과 사람들이 입주해 있는 신축건물들이 한곳에 뒤엉켜 있는 곳이 카타르 도하였다.

이곳 한복판에 카타르금융센터(QFC)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일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QFC는 2005년 5월 출범한 이후 64개 외국 금융회사들을 유치하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올해만 해도 씨티은행과 스코틀랜드로열은행,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등 투자은행,AIG생명보험과 아메리칸생명보험 등 보험사에 사업면허를 내주었다.

스튜어트 피어스 QFC 최고경영자(CEO)는 "시가총액 세계1위인 중국 공상은행(ICBC)에 풀 브랜치(모든 사업을 할 수 있는 은행지점)를 설치할 수 있는 인가를 내주기로 막 결정했다"며 "일본과 한국의 금융회사들과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QFC에서 인가를 받을 외국 금융회사들은 85개 정도가 될 것"이라며 "도하는 이미 중동의 새로운 금융허브"라고 강조했다.

카타르는 인구 85만여명의 소국이다.

수도 도하의 인구는 34만명 정도다.

김남철 대우건설 도하법인 상무는 "두바이에 비하면 도하는 공사 중인 아파트 수요가 다 생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규모"라고 말했다.

이런 소국에 내로라하는 국제 금융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타르 도하는 "이슬람의 율법이 아니라 서구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에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다 맞추겠으니 우리한테 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외국 금융회사들에 적용하는 카타르의 법과 규제는 샤리아(이슬람 율법)가 아니라 영국의 관습법에서 따온 것들이었다.

외국 금융회사가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경우 카타르 도하가 아니라 7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하는 영국에 둔 사법위원회에서 재판을 받도록 했다.

카타르 정부는 소송이나 중재 사안에 대해 '팔이 안쪽(이슬람쪽)으로 굽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런던에 심판소를 차린 것이다.

QFC의 인적 구성을 살펴봐도 글로벌화에 대한 카타르 정부의 의지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규제와 감독 업무를 총괄하는 필립 도페 금융감독위원장은 런던상품거래소(LCE) 이사장을 역임한 뉴질랜드인이다.

마케팅과 내부 살림살이를 책임진 스튜어트 피어스 QFC 최고경영자는 영국에서 HSBC 기업금융센터장을 지낸 호주 사람이다.

스티브 마틴 홍보담당관은 영국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일해온 사람이다.

정문의 수위와 안내원들도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조직의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이슬람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로 QFC는 채워져 있었다.

180여명의 QFC 직원 가운데 카타르 사람은 15명에 불과했다.

이들조차 대부분 외국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다.

관료 출신이 아니면 발을 붙이기가 어려운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딴세상이었다.

카타르 정부는 외국 금융회사들이 자국 시장에서 마음껏 영업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카타르의 일부 지역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경제자유구역이다.

QFC가 경쟁 상대로 선언한 두바이금융센터(DIFC)가 내수시장으로부터 분리된 울타리 내에서만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혁신적인 조치다.

카타르의 1인당 국민소득이 6만5000여달러로 세계 최상위권임을 감안하면 내수시장 개방은 상당한 매력이다.

석유가 고갈된 두바이에 비해 카타르는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데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8%를 넘어설 만큼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도발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감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카타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환대를 받는 존재로 격상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이 도하로 몰려 들어가고 국부펀드인 카타르투자청(QIA)이 런던증권거래소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영국인들은 호감을 보이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AA-(S&P기준)로 중동 지역에서 가장 높다.

서구식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 금융감독당국을 채워넣고 사법기능을 런던에 두고 자국 시장을 외국인들에게 개방한 카타르의 획기적인 발상을 국제사회가 그만큼 신뢰한다는 얘기다.

도하=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