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해 가격에 대해서는 아예 규제를 하지 않거나 시장의 기능에 장애가 생긴 예외적인 경우에만 개입하고 있다.

'가격은 시장에 맡겨 둔다'는 기본 원칙을 따를 뿐이라는 얘기다.

일본은 한국의 기존 공정거래법 시행령 수준에서만 가격 남용을 제재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적정한 가격'을 매긴다는 게 이론과 실제 모두에서 불가능하다는 경험에 따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특정 기업이 앞으로의 독점 상황 조성을 목적으로 가격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약탈적 가격설정)만을 가격남용으로 규제한다.

반대로 현재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한 독점 가격 설정은 규제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이 연방대법원의 판례로 굳어져 있다.

독점 이윤은 정부가 굳이 규제하지 않아도 시장에서 수많은 경쟁자의 출현으로 인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이처럼 경쟁자가 자유롭게 시장에 뛰어 들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없애는 데에만 힘을 쏟는다.

한국 정부가 한 손으로는 첩첩산중의 진입 규제를 쌓으면서 다른 손으론 이를 시장지배적 사업자라고 벌하는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EU는 경제공동체 조약에 가격남용을 규제하는 조항을 포함시켜 놓았다.

하지만 EU 경쟁당국은 "높은 가격 그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를 막기 위해 가격이라는 수단을 쓰는 경우에만 이 조항을 적용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견지해 기업들의 혼란을 줄여주고 있다.

이 조항이 쓰인 사례는 40년간 단 4건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회원국 간 가격차이로 단일시장 형성에 장애가 생긴 경우에만 적용했다.

영국에서는 최근 문제가 된 가격 남용 사건(Attheraces case)의 판결을 통해 법원이 "가격남용 규제는 비용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해 과도한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가격이 경쟁을 제한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에 시행하는 것"이라고 못박아 가격비교법이나 이익률 분석법 등의 규제가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일본 역시 전후 물가관리 정책을 1960년대 폐지한 뒤로는 일관되게 비용의 변동에 비해 가격의 상승이 현저하거나 그 저하가 근소한 경우에만 가격남용으로 보고 있다.

이는 가격남용에 해당하는 요건을 점차 줄여온 결과로 한국의 현행 법.시행령과 같은 수준이다.

한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효율성, 즉 정부의 대외 경쟁력은 비교 가능한 60개국 중에서 47위에 머물고 있다.

이는 '가격 규제(price controls)' 부문에서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가 많은 국가로 지목돼 이 순위가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번에 또 다시 가격 규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선진국 정부들의 규제 완화 추세와는 거꾸로 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