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제출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심사가 18일 예정된 가운데 재계와 경제학계의 눈이 규제개혁위원회에 쏠리고 있다.

이 개정안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가격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규제 시도는 반시장적"이라는 재계와 경제학자, 일부 정부부처 등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일부 단서 조항을 달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그간 '규제개혁'이라는 이름 값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규제승인위원회'라는 비판마저 받아온 규개위가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의 논란은

공정위는 지난 8월7일 가격남용 행위의 요건을 신설 강화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공정위는 그동안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수급 상황 변동에 비춰 가격을 너무 많이 올리거나 아주 적게 내려 폭리의 기회로 삼았을 때만 가격남용으로 처벌해 왔다.

공정위가 시행령을 고치겠다고 나선 것은 기존 규제에 더해 원가보다 너무 많은 가격을 매기는 경우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법예고안에서는 그것이 기술혁신의 결과든 공격적인 투자 선택의 과실이든 묻지 않고 이윤이 너무 과하다면 가격남용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발상은 같은 정부 부처 내에서조차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9월 초 "가격남용 규제를 그렇게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재계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기업 활동의 가장 큰 동인인 '이윤 추구의 자유'를 건드리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가격을 공급 측면에서만 보고 원가와 이익률을 따져 규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장 원리에도 반한다"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문제 제기를 일부 수용하면서도 가격 규제의 골자는 그대로 둔 수정안을 규개위에 제출했다.



◆빈대 잡으려다…

거센 비판에 직면한 공정위는 수정안에서 가격 규제의 대상을 '제도적 또는 사실상의 진입장벽으로 인하여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분야'로 좁혔다.

이에 대해 대형 법무법인(로펌)의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들과 재경부 등 일부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공정위가 범위를 좁혔다지만 당초 목표로 삼았던 업종을 규제하는 데는 당초 안과 비교해서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정위는 우선 정부의 규제로 다른 사업자의 신규 진입이 사실상 봉쇄돼 있는 업종을 제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으로 유.무선 통신업과 은행업을 꼽을 수 있다.

A변호사는 "올 상반기 공정위가 통신사 문자메시지 이용료, 은행 자동화기기(CD,ATM) 수수료 등을 조사하면서 담합에 포커스를 맞추고 들어갔지만 별다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자 이번에는 원가 대비 가격 수준과 이익률 등을 분석해 가격남용으로 제재할 수 없을까 궁리 끝에 나온 것이 이번 개정안"이라고 말했다.

통신요금 은행수수료 등은 소수 사업자가 시장을 나눠 가지면서 '바가지 논란'이 잦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직접적인 가격 규제를 용인한다면 공정위가 언제라도 'ㅇㅇ값이 너무 비싸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전방위 규제에 나설 수 있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전경련 관계자는 "그같은 분야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진입 규제 때문인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규제를 신설한다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며 "공정위는 독과점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겠다고 하지만 결국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정부의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은 법과 시행령의 불일치로 인한 법적 공백을 메우려 하는 것일 뿐 특정 업종을 타깃으로 삼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단서조항 많을수록 권한은 커져

공정위가 수정안을 내면서 각종 단서와 예외조항을 덕지덕지 붙인 것도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적용배제 예외조항이 늘수록 공정위의 재량권과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와 기업결합심사 등 공정위의 기존 규제에서 이 같은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가 스무가지가 넘는 예외.적용제외 조항으로 누더기가 된 출총제를 끝까지 폐지하지 않고 쥐고 있으려 하는 이유는 언제라도 예외 조항의 해석을 달리해 기업의 중요한 투자를 무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 승인권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장점유율 요건에만 걸려 들면 '효율성 증대 효과' 등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만 기다려야 하는 게 기업들의 답답함이다.

황인학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예외 조항 적용 여부에 대한 1차적인 판단은 결국 공정위가 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또 하나의 '권한'이 될 것"이라며 "이 같은 권한이 하나씩 늘 때마다 기업들의 공정위 스트레스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