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300억원 안팎의 대형 여성복 브랜드(캐릭터 캐주얼)들이 밀집해 있는 각 백화점의 4층이 브랜드 간 순위 경쟁으로 떠들썩하다.

제일모직이 2003년 인수한 '구호'가 지난해 매출순위 5위에서 올 하반기(7∼9월) 들어 2위로 뛰어오르며 한섬의 '타임'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것.

◆'구호' 돌풍…1위'타임' 추격


작년만 해도 구호는 매출 247억원(구호 미샤 마인 오브제 타임 등 상위 5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22개 백화점 기준)으로 타임(473억원) 미샤(351억원) 마인(330억원) 오브제(302억원)에 뒤처진 5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구호는 올초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상반기 중 132억원의 매출로 마인과 오브제를 제치고 3위에 오르면서 돌풍을 예고했고, 하반기로 접어들자 구호의 순위는 한 단계 더 상승했다.

7∼9월 누계 매출 순위가 타임(80억원) 구호(65억원) 미샤(62억원) 순으로 나타난 것.9월 한 달간 매출은 타임과 구호가 각각 26억원,23억원으로 집계됐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서울과 수도권의 핵심 매장에서 선전한 덕분"이라며 "지방은 아직 타임 텃밭이지만 서울 강남 지역에선 구호가 1위로 올라선 점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9월 현재 1위 매장 보유 수는 타임 12개,구호 10개지만 구호는 신세계 강남점과 명동 본점,현대 압구정 본점,분당 삼성플라자 등 핵심 상권에서 올초 1위로 올라섰다.

한 백화점 여성복 상품기획자는 "타임 매장이 가장 목 좋은 곳에 위치하는 걸 감안하면 구호의 선전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남녀 토털 패션 기업으로

'구호'가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데 대해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자본과 디자이너 브랜드 간 결합이 본격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라고 평가한다.

'구호'는 디자이너 정구호씨가 1997년 청담동에서 부티크 매장으로 시작한 디자이너 브랜드로 2003년 4월 여성복 부문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의 주도로 제일모직에 편입됐다.

업계 관계자는 "의사결정이 느린 대기업의 특성상 유행에 민감하고 매출 부침이 심한 여성복은 대기업 영역 밖의 일로 여겨져 왔는데 이 같은 공식이 깨진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은 정구호씨를 상무로 영입,디자인 및 마케팅과 관련한 의사 결정 전권을 맡기는 파격을 단행했다.

한 백화점 상품기획자는 "구호는 1년에 두 번 자체 패션쇼를 열어 6개월 후의 유행 트렌드를 제시하고 있다"며 "패션쇼를 여는 것은 여성복 브랜드 중에선 유일하다"고 말했다.

구호 패션쇼는 한 회당 5억원가량이 소요되는 행사로 세계 모델 순위 20위권의 국내 모델인 혜박과 한혜진 등 '톱 클래스'의 패션 모델들이 자청해서 무대에 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한섬의 부진도 제일모직이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제일모직은 백화점별로 구호 매장의 인테리어를 달리하고 매장에 간이 바(bar)를 만드는 등 마케팅을 강화하는 데 비해 한섬은 패션에서 번 돈을 부동산이나 사모펀드에 넣는 등 패션 투자를 거의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섬은 타임 마인 시스템 SJ 등 파워 브랜드를 보유한 여성복 분야의 강자"라며 "상품 기획자들이 한섬에 대항할 대항마를 찾던 차에 구호가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