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과 함께하는 알기쉬운 경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고리대금업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은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자금 대출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 중 일부가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자 이와 관련된 금융 상품들이 연쇄적으로 부실해지면서 금융 시장이 불안해진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월가로 대표되는 탐욕스러운 금융회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기간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전통적인 영업을 통해서는 수익을 올리기가 어려워지자 주택 구입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을 티저레이트(차입 초기에 매우 낮은 금리를 적용하는 영업 기법)로 유인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금리를 적용해 이들 저소득 차입자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리대금업자들은 항상 비난의 대상이었다.

탐욕의 화신이며 냉혈의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고리대금업자는 왜 높은 이자를 받을까.

가장 쉬운 대답은 그가 탐욕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왜 그런 높은 이자를 내면서까지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돈을 빌릴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쉬운 대답은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제임스 스튜어트가 출연했던 영화 '아름다운 인생(It's a wonderful life)' 등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착하지만 어리석어서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린 후 나중에 반드시 곤욕을 치르는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단순하고 명료해서 많은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대답은 어떨까.

고리대금업자는 돈을 빌려 줄 때 돈 빌리는 사람의 위험도가 높을수록,즉 돈을 떼일 가능성이 높을수록 이에 대비해 높은 이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매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테스트 파일럿과 일반 사무원의 사망률이 다르기 때문에 생명보험료가 같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게다가 돈 빌리는 사람이 착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더욱 높은 이자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돈 빌려서 사업할 경우 망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탐욕과 어리석음이 문제인지,아니면 차입자의 위험이 문제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이웃이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판단의 우열이 가려질 것이다.

만약 고리대금업자의 탐욕이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가 한밤중에 쇠사슬 끌고 검은 옷 뒤집어쓰고 '미래의 네 묘비명을 생각해 봐라'라고 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고리대금업자가 자신의 탐욕을 반성하고 회개해 더 이상 높은 이자를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돈 빌리는 사람이 어리석어서 문제라면 '적정한 이자 수준이 이것이다'라고 알려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돈 빌리는 사람의 위험이 문제라면 어떨까.

돈 빌리는 사람의 위험을 줄이는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미국의 주택저당증권(모기지)을 이용한 주택자금 대출제도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개별적인 대출은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지만 여러 건의 대출을 한데 묶으면 평균적으로 대출을 못 갚는 사람의 수가 전체 대출자의 일정한 비율이 되고 전체적으로는 그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모기지 판매업자가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우리가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금융회사가 저소득층에게 주택 자금을 대출해 준 것을 탐욕스러운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주택자금 대출을 '무분별하게' 받은 저소득층을 바보라고 비웃는 것도 가당치 않다.

고리대금업자,서브프라임 모기지 판매업자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테고 돈을 빌린 사람도 주어진 정보하에서 자신의 처지를 감안해 최대한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차입자의 위험을 분산하는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위험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곤란해지자 투자자에 대한 신용 공급이 끊기면서 부실이 연쇄 작용을 일으킨 게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공연히 '탐욕스런 고리대금업자'(혹은 모기지 판매업자)를 회개시킨다고 쇠사슬을 끌고 다니거나 '바보'(저소득 차입자)들을 계몽하려 애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위험'이라는 정보가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금융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금융상품 가격에 위험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는 등 금융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편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김준한 < 한은 금융경제연구원 통화연구실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