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강남 아줌마'가 있다면 일본엔 '와타나베 부인'이 있다.

와타나베 부인(Mrs.Watanabe)은 해외 투자에 나선 일본의 가정주부를 통칭하는 말.일본의 초저금리와 엔저를 배경으로 해외주식 해외펀드 외환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40~50대 주부 투자자들이다.

강남 아줌마의 재테크 주종목이 부동산 이라면 와타나베 부인의 전공은 외환투자인 셈이다.

이들은 가끔 투기에 가까운 투자를 하기도 한다.

금융회사에 맡긴 증거금의 최고 100배까지 인터넷을 통해 외환을 살 수 있는 증거금외환(FX)거래가 와타나베 부인들 사이에 인기다.

와타나베 부인들의 FX거래금액은 지난해 약 200조엔(1600조원).도쿄 외환시장 전체 거래액의 20~30% 규모다.

와타나베 부인들이 엔캐리 트레이드(싼 엔화를 팔아 달러 등 외화에 투자하는 것)의 '큰 손'으로 불리는 이유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이후 국제금융시장은 엔캐리 청산의 바로미터로 와타나베 부인들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 도쿄 시내 한 호텔 중국식당에서 와타나베 부인 4명을 만나 그간의 대박 스토리와 성공비결, 엔캐리 청산여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전업주부인 이들은 최근 'FX 미녀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투자정보와 경험담 등을 공유하고 있는 열성 와타나베 부인들이다.




▶어떤 계기로 외환투자를 시작했나.

-도리이 마유미씨(FX 미녀회 회장·41)=작년 2월부터 FX거래를 시작했다.

남편이 퇴직했을 때 불안한 노후에 대비하기 위해 재테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로서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는 재테크란 점이 끌렸다.

-가와바타 유키코씨(47)=원래 주식을 했었는데,지난해 라이브도어 사건(한 벤처기업의 회계부정 사건)으로 주가가 폭락하는 걸 보고 빠져 나왔다.

다른 투자 대상을 찾다가 FX거래를 선택했다.

주식거래와 달리 수수료도 거의 없고, 인터넷으로 하루 24시간 언제나 거래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가와카게 야요이씨(41)=재작년 10월부터 FX거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전엔 여유자금을 주로 증권사에서 파는 펀드에 투자했지만 지금은 모두 외환에 투자하고 있다.

-오카모토 도모요씨(42)=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편 사업이 어려워져 수입이 불안정해졌던 게 계기였다.


▶FX거래는 증거금의 몇 배(투자배수·레버리지)까지 투자하나.

-가와카게=보통 원금의 5배 정도로 거래한다.

100만엔(약 800만원)을 증거금으로 예치하고 500만엔어치의 달러를 사는 식이다.

-도리이=난 좀 더 공격적으로 한다.

보통 70배 정도의 배율로 투자한다.

적은 원금으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레버리지를 높게 가져가는 편이다.

-가와바타=평소엔 5배 정도 배율로 투자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금융 불안기엔 2~3배 정도의 레버리지만 이용한다.

-오카모토=레버리지 배율은 시기와 투자 대상,금액에 따라 그때그때 달리 적용한다.

평균적으로는 5~10배 정도다.


▶지금까지 얼마 투자해서 얼마나 벌었나.

-도리이=초보 때는 600만엔으로 뉴질랜드 달러 등을 사서 3개월 만에 500만엔 가까이 번 적도 있다.

하지만 작년 여름 환율 폭락(엔고)으로 500만엔 손해를 보고 손절매(샀던 외화를 되파는 것)했다.

외환투자 기법 등을 공부한 뒤 심기일전해 작년 9월부터 200만엔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매달 평균 100%의 수익률을 기록해 200만엔씩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총 투자기간인 1년6개월을 결산하면 1500만엔 정도를 벌었다.

(도리이씨는 자신의 투자 경험담을 소개한 'FX로 월 100만엔 버는 방법'이란 책을 최근 내기도 했다)

-오카모토=지난 1년간 총 1000만엔을 투자해서 월 평균 200만엔을 넘는 이익을 내고 있다.

총 수익액은 3000만엔 가까이 된다.

-가와바타=투자원금은 200만엔인데, 작년에 700만엔 정도 벌었다.

올 들어선 최근까지 200만엔의 이익을 챙겼다.

-가와카게=200만~300만엔을 예치하고,매일 몇십만엔씩 투자한다.

지난 1년간 총 150만엔 정도 벌었다.


▶지난달 엔화가 달러당 111엔까지 올라갔을 때 손해보지는 않았나.

-가와바타=올초 미국 서브프라임 문제가 터졌을 때부터 엔고에 대비해 왔다.

그래서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엔저가 지속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도리이=엔고 때도 이익을 냈다.

엔화값이 오른다 싶으면 사 놓았던 달러 등을 팔아 엔화를 샀다가 엔화가 더 오른 뒤 되팔았다.

수시로 엔화와 외화를 사고 팔 수 있는 FX거래는 환율이 출렁일 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오카모토=나도 그랬다.

작년까지는 무조건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러를 사기도 하고, 엔을 사기도 한다.

대신 포지션(외화 매입 보유)을 오래 가져가기보다는 단타 매매를 하고 있다.

-가와카게=시장이 불안할 때는 본격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파친코(일본의 구슬치기 게임)하듯이 조금씩 투자한다.

요즘은 컴퓨터에 한국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을 띄워 놓고 보면서 틈틈이 소액 거래를 즐기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엔 관심 없나.

-가와카게=부동산에는 관심이 있다.

외환투자로 1억엔 이상 돈을 모으면 맨션(한국의 아파트)을 몇 채 사서 임대사업을 하고 싶다.

그게 노후를 위한 가장 안정적인 투자 수단이라고 본다.

-가와바타=부동산은 몰라도 주식엔 관심없다.

종목이 너무 많아 선택하기도 어렵고, 투자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경영자의 부정이나 실수로 주가가 폭락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환투자의 원칙이나 비결이 있다면.

-가와카게=자기 여유자금을 갖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은행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건 금물이다.

혹시 손해를 보더라도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자금만 갖고 시작하는 게 좋다.

-가와바타=공부를 해야 한다.

뭐든지 투자를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공부를 하면 불투명한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도리이=손절매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초보 때 손실을 보더라도 '나중에 다시 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티다 더 큰 손실을 본 적이 많다.

지금은 투자금 대비 손실률이 10%만 되면 무조건 팔아 버린다.

그러다 다시 기회를 보고 시작한다.

-오카모토=전업주부가 투자할 때는 남편에게 투자내용을 알리는 게 좋다.

남편에게 숨기고 외환투자를 했다가 최근 1000만엔 정도 손해를 봐 가슴앓이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와타나베 부인 중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라는 얘기도 한다.

투자 결정을 남편과 상의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비밀로 해서도 안 된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