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길이가 427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칠레는 남미에서 여러모로 '이단아' 같은 나라다.

서쪽은 태평양,동쪽은 평균 고도 5000m가 넘는 안데스산맥이 이 나라를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등 이웃 국가들로부터 고립시켜 왔다.

'사실상의 거대한 섬나라'로 불릴 정도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남미 국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사회제도와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칠레는 1980년대에 남미 최초로 공기업 민영화에 착수,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시키는 선도 역할을 했다.

세율이 높기는 하지만 100,200페소(200,300원)짜리 물건을 사도 영수증 발부가 의무화돼 있을 정도로 세원 관리가 철저하고,교통경찰이나 행정공무원 등이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소액이라도 뇌물을 받았다가는 즉시 파면되고,평생 지급받는 공무원 연금마저 박탈하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칠레 정부는 최근 조세 제도를 단순화하고 개·폐업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업 환경을 더욱 개선시키기 위한 '국가경쟁력 강화 프로젝트(CPP)'를 추진하고 있다.

칠레의 이 같은 노력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9위,미국 헤리티지 재단이 산정한 경제자유도에서 155개국 중 11위,국제투명성기구의 반(反)부패지수 순위 20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제 공인을 받고 있다.

한국의 헤리티지 경제자유도 순위는 45위,반부패지수 순위는 42위였다.

구리광산을 제외하고는 브라질,아르헨티나에 비해 이렇다 할 만한 자원을 갖지 못한 칠레가 1인당 국민소득(2006년 기준) 8641달러로 브라질(4755달러),아르헨티나(5675달러)를 제치고 ABC 3국 중 최고의 생활 수준을 자랑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클라리사 하르디(Clarisa Hardy) 칠레 국가기획부 장관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칠레도 사회당이 이끄는 좌파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다를 게 없다"면서도 "분명한 차이점은 사회 안전망 확충과 함께 재정 건전성 유지와 개방경제 확대를 일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하르디 장관은 "칠레 역시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국가 성장동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럴수록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규제를 최소화함으로써 시장을 살아숨쉬게 해 빈곤층이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미 어느 국가의 좌파 정부보다도 '실용주의' 색채가 뚜렷한 칠레의 경제개방 정책은 절대 빈곤층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하르디 장관은 "1990년대 초만 해도 월 수입 90달러를 밑도는 절대 빈곤 인구가 칠레 전체의 40%에 달했지만 작년 말 현재 13%로 대폭 감소했다"며 "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기록적인 성취"라고 강조했다.

산티아고=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