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동남부의 대서양 한복판에 떠있는 페트로브라스(Petrobras)사의 캄포스 유전.해저 2200m가 넘는 깊은 바닷속에서 원유를 퍼올리는 이곳이 요즘 엑슨모빌 BP 셰브론 등 석유 메이저 회사들의 단골 견학코스로 떠올랐다.

세계의 주요 육상 및 연·근해 유전이 거의 고갈돼가면서 심해 유전이 대안으로 떠오른 결과다.

브라질이 요즘 바이오 에탄올로 유명해졌지만,해저 1000m 이상 심해에서 석유를 캐내는 기술을 갖춘 곳은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가 유일하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1970년대 페트로브라스가 심해 유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엑슨모빌 등에 합작을 제안했지만,한결같이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깊은 바닷속을 헤집어 원유를 채취하려면 육상이나 대륙붕 유전에 비해 몇 배나 더 원가가 들어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깊은 바닷속에서 '기적'을 퍼올리다

심해유전 외에는 캐낼 만한 광구가 없는 브라질은 절박했다.

1974년까지 근 10년간 두자릿수의 고속 성장가도를 달렸던 브라질을 마이너스 성장,네자릿수의 살인적 인플레라는 복합적인 늪에 빠뜨린 도화선은 1차 석유위기였다.

석유 자립 외에는 회생할 길이 없다고 판단한 브라질은 배수의 진을 치고 독자적인 심해유전 채굴 설비 개발에 나섰다.

페트로브라스는 근 20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심해유전 채굴에 성공했고,지금은 하루 원유 생산량 190만배럴로 미국 셰브론을 제치고 세계 5위의 석유 메이저로 떠올랐다.

페트로브라스는 멕시코와 앙골라,나이지리아 등의 심해유전에도 진출,적지 않은 원유를 캐내고 있다.

2015년에는 엑슨모빌마저 따돌리고 세계 최대 석유회사로 등극한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10년 남짓한 사이에 100% 석유 수입국에서 완전 자급국가로 환골탈태한 브라질이 요즘 '제2의 에너지 신화'를 일궈가고 있다.

사탕수수에서 무(無)공해 '그린 오일(green oil)'을 뽑아내는 바이오 에탄올(알코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

브라질 전국의 2만5000여개 주유소에서는 가솔린과 함께 바이오 에탄올을 판매하고 있다.

상파울루 신시가지인 모룸비(Morumbi)의 한 주유소.급유를 위해 이곳에 들어서는 자동차 3대 중 2대꼴로 가솔린이 아닌 에탄올 주유를 요구한다.

이 주유소의 주앙 호베르투 매니저는 "석유값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가솔린에 비해 경제적인 에탄올을 찾는 고객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바이오 에탄올 '세계 제패' 꿈꾼다

바이오 에탄올은 연비가 가솔린의 70% 수준에 불과하지만,가격은 절반 이상 낮아 경제성을 이미 입증했다.

브라질은 지난해 178억ℓ의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전 세계 사용량의 34.9%를 공급하며 미국(185억ℓ,35.2%)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그러나 생산효율에서는 미국보다 두 배 이상 앞선다.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는 미국선 농지 1㏊당 평균 3200ℓ를 생산한다.

반면 사탕수수를 원료로 쓰는 브라질은 1㏊당 평균 6800ℓ의 에탄올을 이끌어낸다.

가격경쟁력에서도 브라질산이 단연 세계 1위다.

브라질산 에탄올은 1ℓ당 19센트 정도에 판매된다.

그러나 같은 사탕수수로 만드는 호주산은 32센트,미국산은 47센트에 각각 팔린다.

브라질이 바이오 에탄올 분야에서 세계적인 효율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주도면밀한 기술개발 드라이브 결과다.

1975년부터 알코올 에너지 국가계획을 시행,1980년에 50만대의 바이오 에탄올 차량 생산을 시작할 정도로 오랜 기술 축적의 역사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향후 7년간 100억달러를 투자해 에탄올 경쟁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처럼 탄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에탄올 생산량의 8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독일 일본 인도 등도 대기오염 줄이기에 안간힘을 쓰면서 브라질산 바이오 에탄올 수입을 늘려가고 있다.

알코올을 10% 이상 혼합한 가솔린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일본은 작년 상반기 브라질에서 3400만달러어치의 에탄올을 수입했다.

올해는 그보다 배 이상 늘어났을 것이라는 게 페르난두 모레이라 브라질 사탕수수에탄올협회(UNICA)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1990년대의 질곡을 딛고 순항 궤도에 올라선 브라질 경제는 심해 유전과 바이오 에탄올 등 '브라질만의 필살기'로 더욱 탄탄한 뒷받침을 받고 있는 셈이다.

아르헨은 잠자는 자원 무한,칠레는 FTA 드라이브가 버팀목

브라질 못지않은 농업·자원 대국인 아르헨티나도 '믿는 구석'이 널려 있다.

아르헨티나 생산연구원의 파울라 에스파뇰 책임연구원은 "아르헨티나는 금·은·동 등 주종 광물자원의 잠재매장량은 세계 6위지만,전체 국토의 75%가 미탐사 상태여서 개발투자 잠재력은 세계 2위로 평가받고 있다"며 "천연가스 생산은 남미 1위,원유 생산은 남미 3위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두유와 해바라기유의 수출 규모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대체할 바이오 연료의 투자 대상지로도 스페인 프랑스 등 라틴 유럽권 국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칠레는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국으로 요즘 '카퍼(copper) 달러'를 쓸어담고 있다.

2005년만 해도 파운드당 1.63달러였던 국제 구리가격이 지난해 이후 3달러를 넘나드는 초강세를 보이면서 '구리 특수(特需)'를 누리기 시작,2005년 92억달러였던 무역흑자가 작년엔 211억달러로 급증한 것.

그러나 '칠레가 살아가는 법'에는 브라질·아르헨티나 양대 강국과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

한국 미국 등 46개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세계 최다 FTA 체결국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게 말해주듯 완전한 시장개방을 통해 경제 체질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남미3국이 오랜 질곡을 딛고 글로벌 경제무대에 화려한 복귀를 선언하고 있는 데는 나름의 확고한 '주(主)특기'가 뒤를 받쳐주고 있다.

일본무역진흥회(JETRO)의 시다라 다카히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무소장은 "남미3국 경제의 저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그 점"이라고 강조했다.

상파울루·부에노스아이레스·산티아고=글·사진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