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 회장 부인 변중석 여사 별세] "재봉틀ㆍ장독대가 내 재산 전부"
17일 타계한 고(故) 변중석 여사는 조용한 내조를 통해 현대그룹을 일으킨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알려져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안주인이었지만 재봉틀 하나와 장독대를 전 재산으로 여길 정도로 한결같은 근검함과 겸허함 속에서 살았다.

1921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36년 1월 같은 고향마을 출신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의 나이 만 15세 때의 일로 정 명예회장이 6살 연상이었다. 변 여사는 정 명예회장과 결혼해 장남 몽필(1982년 사망),2남 몽구(현대.기아차그룹회장),3남 몽근(현대백화점 명예회장),4남 몽우(1990년 사망),5남 몽헌(2003년 사망),6남 몽준(국회의원),7남 몽윤(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8남 몽일(현대기업금융 대표),장녀 경희씨(선진종합 회장 부인) 등 8남1녀를 슬하에 뒀다.

고인은 결혼 이후에도 줄곧 욕심없는 소박한 생활을 하며 평소 "재봉틀 하나와 아끼던 장독대가 내 재산의 전부"라고 말해왔다. 남편인 정 명예회장이 사준 자동차를 집에 놔두고 도매시장에 나가 채소나 잡화를 사서 용달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는 언제나 통바지 차림이어서 집에 찾아온 손님들은 고인을 일하는 아주머니로 착각하기 일쑤였다.

생전에 매일 오전 5시 모든 식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던 정 명예회장을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직접 챙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고 정순영 성우그룹 회장,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을 비롯해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 시동생들의 결혼 등 집안 대소사도 도맡아 처리했다.

정 명예회장은 자서전(이땅에 태어나서)에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 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술회했다. 또 "젊은시절 그렇게 어려웠던 고생을 거치면서도 불평불만 하나 내색하지 않고 집안을 꾸려준 내자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며 고인의 겸허함과 검소함을 높이 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고인의 묵묵한 내조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한국경제의 기적을 만들어 낸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한국경제를 일으킨 거목으로 우뚝설 수 있도록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던 고인은 남편을 떠나보낸 지 6년반 만에 그의 곁에 영원히 잠들게 됐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