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성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말,카자흐스탄 투자개발청인 카즈인베스트를 방문했을 때,보다코스 콥바예바 대표는 뜻밖에도 국가경쟁우위론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미 하버드대 교수를 화두로 향후 산업구조 개편의 방향을 풀어 나갔다. 우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벤치마킹해 성장 패러다임을 짜는 정도로 생각하고 이곳을 찾은 기자는 과문(寡聞)함에 당혹감마저 느꼈다.

카자흐스탄은 이미 2003년부터 2년간 포터 교수가 이끄는 하버드 경영대팀과 함께 그의 클러스터 이론(같은 업종을 특정 지역에 모아 시너지효과유발)을 현지에 접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콥바예바 대표는‘2003~2015 혁신적 산업발전전략’은 그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석유화학 건축자재 식품가공 물류 제련 섬유 관광 등 7개 분야를 중점 육성 산업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원개발보다 제조업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중앙아시아는 지금‘산업다각화’란 주술에 걸려 있다만나는 관료마다 클러스터 구축이 첫 번째 화제다. 자원 부국이 겪을 수 있는 이른바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의 함정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결과였다. 중앙아시아의 자원의존적 경제가 자칫 제조업 붕괴란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누차 자원 고갈에 대비한 산업구조 개편을 독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카자흐스탄은 하루 평균 원유를 130만배럴씩 생산하는 석유 수출 대국이지만 원유를 팔아 휘발유를 수입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정유시설이 크게 부족해서다。동쪽으로 국경을 맞댄 중국이 수출선을 끊으면 생필품 파동을 겪을 것이란 두려움도 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카자흐 정부의 한 관계자는 소비재의 80%를 중국으로부터 공식,비공식적으로 들여온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이‘2015 혁신적 산업발전전략’‘2030 프로젝트’등과 같은 장기 청사진을 세워 놓고 산업다각화에 총력전을 펴는 데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이를 위해 원유 수입의 60% 정도인 150억달러를 확보해 지난해 카지나 펀드를 만들었다。몇 년 후 나타날 수 있는 오일이나 광물 가격의 급락에 대비해 서둘러 제조업을 확충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IT(정보기술,알라타우 지역) BT(생명공학,스테프노고르스크 지역) NT(초정밀공학,쿠르차토프 지역) 등 3개 첨단분야의 육성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갈 길은 여전히 먼 실정이다.

인근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다. 올해 카즈인베스트와 유사한‘우즈인 포인베스트’란 조직을 만들어 외국 제조업체 유치에 뛰어들었다. 우즈벡이 필요로 하는 산업에 참여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내걸었다. 이르마토프 M 바흐티에르‘우즈인포인베스트’국장은 IT 식품가공 호텔 건설 등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희망했다.

중앙아시아 정부들이 마이클 포터란그들 국민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미국 학자를 끌어들이고,외국기업에 자원개발권을 주는 대가로 제조업 기지 건설을 요구하며 자원 의존 경제의 함정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전이나 광물개발 못지않게 소비재 및 중화학산업에 외국기업의 많은 관심을 요구한다. 국내 기업들이 어느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코트라는 건축자재류 정보통신 의료장비 보안기기 식품가공 등을 유망 진출 업종으로 분석했다. 자원보고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흥분보다는 소비재와 이동통신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분야에서 승부를 거는게 현명한 접근이란 지적이다.

알마티·타슈켄트=글·사진 김영규 기자 young@hankyung.com

◆더치 디지즈 = 1960년대 막대한 가스 개발로 호황을 꿈꾸다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네덜란드의 역사적 경험을 빗댄 말。자원의 보고는 축복일 수도 있지만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을 경우 재앙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두바이 기적도 더치 디지즈의 반면교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