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 스티브 잡스의 '독선'

아이팟과 아이폰을 통해 시대의 '아이콘'을 창조했다는 칭송을 듣고 있는 스티브 잡스.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서 그가 갖는 무게는 결코 빌 게이츠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을 창조한다"는 귀신 같은 영감을 갖고 있는 잡스에게도 성공과 실패는 공존하고 있다.

1976년 불과 20세의 나이에 애플을 창업했던 잡스는 '애플Ⅰ'과 '애플Ⅱ'의 성공적인 출시에 힘입어 일약 IT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그는 그래픽과 마우스의 접목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본 선견력에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끈 실행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984년,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호언했던 매킨토시 출시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일대 시련에 봉착한다.

잡스는 이미 매킨토시 출시에 앞서 조지 오웰이 미래 인류의 파멸적 모습을 그린 '1984년'을 마음껏 조롱한 터였다.

매킨토시의 기술은 분명 혁신적이었지만 잡스는 고객을 생각하지 않는 기술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

고객들은 보다 범용적인 IBM PC와의 호환성을 요구했지만 잡스는 이를 차갑게 거절했다.

고객들이 좋은 기술을 식별하는 안목이 없다고 불평했다.

1985년 애플의 최고경영자직에서 쫓겨난 잡스는 '넥스트 큐브'라는 새로운 컴퓨터를 내놓았지만 이 또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젊은 시절 큰 성공을 거뒀던 경험이 자만과 독선을 키웠고 이것이 참담한 실패로 귀결된 것이다.


# 사례 2 - K마트의 '현실 착오'

2002년 1월22일은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대형 할인점 K마트가 파산을 선언한 날이다.

K마트는 1899년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소규모 잡화점으로 출발한 이후 1960년대 대규모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어 미국 전역의 유통을 석권한 기업.당시 최고경영자였던 해리 커닝햄(Harry Cunningham)은 할인점의 성공요건이 판매액에 대한 마진율보다는 총투자에 대한 수익률에 있다고 판단,대규모 매장을 확보하고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구매자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를 위해 질 좋은 브랜드 상품을 지속적으로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핵심전략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커닝햄이 물러나고난 뒤 위기가 닥쳐왔다.

K마트의 새로운 경영진은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 못한 채 과거의 전략만 답습했다.

성장의 원동력을 단순히 확장전략에 있었던 것이라고 믿고 점포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던 것.

세밀한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점포는 어두운 조명과 촌스러운 진열대,불편한 통로 등으로 애물단지로 변해갔다.

게다가 품목별 이익률이 높다는 이유로 질이 떨어지는 자체브랜드 상품을 늘림으로써 단골손님들마저 발길을 끊게 만들어버렸다.



지난 3월 대표이사 3연임을 앞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난 우의제 하이닉스반도체 전 사장(63).4년6개월간의 재임기간 동안 온갖 부실을 걷어내며 회사를 14분기 연속 흑자기업으로 돌려세운 일등공신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우 사장의 변(辯)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경영환경 급변으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성공의 기억과 경험'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영원히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성공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교만과 자만심에 눈이 멀어버리는 순간 어느새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경영학자들이 강조하는 '이카루스의 역설(Icarus Paradox)'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공예의 신' 다이달로스의 아들.우연찮게 감옥에 갇혔던 그는 아버지가 만든 밀랍 날개를 달고 탈옥했다.

몸이 하늘 높이 두둥실 떠오르며 기분 좋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날갯짓 아래로 에게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고도를 계속 높여가던 이카루스의 마음 속에는 슬며시 오만함이 머리를 쳐들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잊어버렸다.

강렬한 태양에 깃털을 이어붙인 밀랍이 녹아내렸다.

후회해도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카루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 이야기는 성공이 결국 파멸을 낳고 가장 소중한 자원이 나중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저술가 짐 콜린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Good to Great'를 통해 "좋은 것은 위대함의 적(enemy)"이라고 갈파했다.

좋은 사람,좋은 학교,좋은 정부,좋은 기업들이 좋은 상태에 만족(자만)해버리면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짐 콜린스는 자만에 대한 여섯 가지 진단 척도를 제시했다.

1.자사의 탁월한 경영실적을 자랑한다

2.CEO가 유력 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한다

3.경영의 대가들이 좋은 기업이라고 칭찬한다

4.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기념물을 건립한다

5.특정 건물이나 거리에 기업의 이름이나 창립자의 이름을 붙인다

6.최고 경영진들이 하는 얘기가 비슷하다

성공적인 기업을 일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을 계속 이어가기는 더욱 어렵다.

이병남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 대표는 "성공하는 기업들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그 속에 자라나고 있는 실패의 싹을 관찰한다"라며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기업일수록 실패의 쓴맛을 보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기업의 수명은 가련할 정도로 짧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진행된 유럽에서도 기업의 평균수명은 13년 정도다.

우리나라에선 1965년 기준으로 매출액 100대 기업 중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1955년 포천 500대 기업에 포함됐던 기업들 중 40년 이상 생존한 기업은 32%에 그쳤다.

기업의 수명보다 더욱 짧은 것은 승패다.

우리가 흔히 관찰하듯이 1년을 단위로 하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는 거의 매년 다른 우승팀을 배출한다.

전년도 우승팀이 이듬해 꼴찌로 전락하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

정상에서 추락한 팀의 변명은 대개 "우승한 뒤에 자만했다" "정신적으로 나태해졌다"는 것이었다.

숱한 승부와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면서도 좀처럼 안되는 게 '과거의 승리를 망각하는 것'이다.

삼성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창출했던 2004년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을 모아놓고 칭찬 대신 "위기의식을 가져라"는 당부를 했다.

3년 뒤인 올해 이 회장의 위기감은 '엄살'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망각'은 경험을 얘기하고 추억하는 우리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대단히 인위적이고 이성적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혁신이나 창조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조일훈 산업부 차장대우(팀장) jih@hankyung.com
주용석 기획취재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류시훈 기획취재부 기자 bada@hankyung.com
정 현 인턴기자(한양대 신문방송학과) opentaiji@naver.com
이승호 인턴기자(서울대 사회학과) _moonbird_@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