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도부백화점 5층 신사 잡화 매장.'멋쟁이 수염 아빠'란 이름이 붙여진 한 코너에서 60대 신사가 고풍스러운 유리장식장 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2만~3만엔(약 16만~24만원)대의 수제 고급 면도기와 4만엔(약 32만원)에 달하는 셰이빙 브러시에 꽂혀있었다.

올초 은행에서 정년퇴직했다는 가토 슈이치(60)는 "직장생활을 할 땐 시간이 없어 전기면도기를 썼지만 이젠 여유롭게 셰이빙 크림을 바르고 깔끔하게 면도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 백화점은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맞은 단카이세대를 겨냥,올초 수제 면도기 코너를 열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지난 3~5월 면도기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 이상 늘었다.

점원 오카다 교코는 "주로 퇴직 후 멋과 여유를 추구하며 생활의 변화를 원하는 60대 초반의 손님이 많다"며 "2만5000엔짜리 프랑스제 면도기가 가장 인기"라고 귀띔했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가전 체인점인 요도바시카메라는 본관 4층에 노년층을 위한 음향기기 코너를 최근 따로 만들었다.

이곳에선 켄우드 파이어니어 등 전문 오디오메이커들이 1970~1980년대 선보였던 브랜드가 100만엔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구매자들은 대부분 옛 향수를 즐기려는 50,60대들이다.

단카이세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 시니어들의 소비 패턴은 고가품 등을 자신있게 구입하고,해외 여행을 즐기며,미래를 위해 돈을 굴리는 성향이 뚜렷하다.

이에 따라 단카이세대의 '쓰고(Spend) 즐기고(Enjoy) 돈을 굴리는(Run Money)' 이른바 SER시장을 잡으려는 여행사와 유통업체 금융회사 간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퇴직기념 고가 여행상품 러시

단카이세대의 퇴직을 맞아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여행업계다.

덴츠 조사에 따르면 단카이세대는 퇴직 후 여행에만 1조1160억엔을 쓸 것으로 분석됐다.

조사 대상의 10명 중 9명은 해외 여행을 가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JTB는 아프리카 대지에서 석양 즐기기,타지마할 궁전 둘러보기 등 일반 여행상품에선 체험하기 힘든 장기 체류형 여행상품을 선보이며 인기몰이에 나섰다.

긴키니폰여행사는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단카이세대를 겨냥해 오스트리아 모차르트 탐방 여행 상품을 내놓아 인기를 모았다.

1인당 여행비용이 350만엔이나 하는 세계일주 투어상품도 출시했다.

JTB 관계자는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단카이세대는 퇴직기념 여행 등으로 상당히 고가의 상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골프장 스키장 헬스클럽 등 레저업계도 다양한 할인제도를 도입하며 단카이세대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저출산과 함께 젊은층 수요가 줄어들자 단카이세대로 눈을 돌린 것이다.

대형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는 센트럴 스포츠는 전체 회원 중 50대 이상 비율이 지난해 37.9%로 5년 전보다 10%포인트 높아져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마쓰타니 아키히코 정책연구원 대학원 교수(인구경제학)는 "단카이세대는 돈이 많아도 소비성향이 낮던 기존 노년층과 달리 소비성향이 높은 게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단카이 전용 금융상품 공세

금융회사들도 단카이세대를 맞기 위해 분주하다.

50조엔이 넘는 단카이세대의 퇴직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용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계 피델리티투신은 원금 손실을 꺼리는 퇴직 세대의 속성을 감안해 원금을 보장하면서 수시로 인출이 가능한 퇴직금활용펀드를 내놓았다.

노무라자산관리회사는 단카이세대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투자유치설명회에 파견하는 직원을 두 배로 늘렸다.

시중은행들도 단카이세대만을 위한 '프리미엄 살롱' 등의 상담실을 만들고 있다.

이들에겐 예금금리를 높여 주거나 투자정보와 같은 특별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은 퇴직금 운용 플랜을 이용하거나 거래잔액이 500만엔 이상인 고객에 대해선 예금금리를 우대해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몬지 소이치로 다이와투진투자고문 수석투자전략가는 "단카이세대는 기존의 금융상품 고객과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 단카이 세대란 … >

일본 전후 베이비부머의 첫 세대격인 단카이는 1947~1949년생으로 약 691만명,일본 인구의 5.4%에 달한다.

단카이란 '뭉치.덩어리'를 뜻한다.

이 세대 중 440만~490만명은 올해부터 3년간 정년퇴직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경제가 단카이세대를 주목하는 것은 이들의 엄청난 경제력 때문이다.

우선 이들이 들고 나올 퇴직금 규모가 53조4000억엔(약 427조원,노무라증권 금융경제연구소 추정)에 달한다.

일본 정부의 올해 세입 예산(53조5000억엔)과 맞먹는 규모다.

이들이 갖고 있는 자산 규모도 총 130조엔(약 1000조원)인 것으로 다이이치생명은 추산했다.

또 단카이세대를 포함,50세 이상 시니어계층은 개인 금융자산의 4분의 3을 보유하고 있다.

단카이세대는 이처럼 막대한 돈을 갖고 일본의 소비시장을 좌지우지할 전망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고도성장기에 성장한 단카이세대는 '돈을 쓸 줄 아는 세대'인 만큼 이들이 형성할 소비시장은 기대 이상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는 단카이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소비만 약 6조6000억엔 늘고,그에 따른 경제효과는 15조엔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