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보상에만 급급하지 말고 원칙을 제대로 세운 뒤 미국 제품과 싸워 이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0년 간 6.0% 증가하고 취업자가 34만명 늘어나는 등의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됐지만 축산업과 감귤 등을 비롯한 농업부문이나 일부 서비스, 제약업 등에서는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1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한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토대로 6월 말까지 피해 부문에 대한 구체적인 보완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협상 결과에 대한 비난을 우려해 피해부문에 무조건 보상금을 지급하는 식의 대책을 지양하고 전직 지원이나 차별화된 상품 개발, 직업 훈련 등을 통해 실질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보상, "퍼주기 안된다"

정부는 한미 FTA 타결 직후 소득보전직불 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폐업지원금을 지급하는 한편 피해 기업 근로자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전직지원장려금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보완대책 방향을 발표했다.

FTA로 쇠고기나 감귤, 콩 등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지면 하락폭의 80%까지 소득을 보전해주는 것이다.

또 FTA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폐업하려는 농가나 어가에 대해서는 품목별로 폐업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도 FTA로 피해를 입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발생하면 무역조정지원제도나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고용안정을 꾀하고 전직이나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보상금 지급만을 되풀이할 경우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으므로 퍼주기식 대책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피해보상은 불가피하지만 피해 당사자가 정부의 이 같은 대책을 믿고 의존하게 된다면 시장개방에 따른 경쟁력 제고와 경제구조 선진화라는 FTA의 기대 효과는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피해를 보상해줄 때도 대상이나 기준, 규모, 방식 등에 대한 원칙을 세운 뒤 집행해야 한다"면서 "원칙 없이 피해산업을 지원했다가 수출보조금 등으로 보이면 투자자 국가소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칙 입각한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정부의 FTA 대책이 보상보다는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 내용이 그동안 농축산업이나 수산업, 제조업 등을 중심으로 기존에 진행해왔던 산업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이 된다면 경쟁력 제고는 고사하고 국내시장이 미국산 제품의 판매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다.

단계적이긴 하지만 시장이 열리고 미국산 제품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개시되는 만큼 싸워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박감 속에 수준 높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조만간 국내 시장에 유통될 것으로 전망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경쟁력에 대해 "국산 한우는 품질이 한 차원 높다"고 큰 소리만 칠 것이 아니라 유통단계의 `거품'비용을 제거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 대신 국산 한우가 일반 가정의 식탁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세익 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피해보상이 퍼주기 식이 된다면 농업인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면밀한 관찰을 통해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 대책이 마련돼야 하며 농민들도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