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숱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짧은 한두 마디로 FTA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협상의 고충을 토로하는 '촌철살인'이 적잖이 흘러나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됐다.

일부에서는 FTA 반대를 정치적 의도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격한 표현을 쓰기도 해 상당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재직 시절인 지난해 6월23일 국회 세미나에서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하다'는 말로 FTA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말은 당초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지난해 3월7일 국정 브리핑에 기고한 원고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미 FTA가 크게 이슈화되기 전이어서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대표적 개방주의자인 한 전 부총리의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무역협회장 재직 시절인 지난해 2월10일 경제5단체장 간담회에서 '큰 고기를 잡으려면 큰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말로 '미국이 FTA 상대로 제격'이라는 의미를 담아냈다.

수산업으로 기업을 일군 김 회장에게 딱 어울리는 발언이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작년 6월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아드보카트 전 감독은 강팀들과 경기해야 더 좋은 성과를 얻는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미국을 FTA 협상 상대로 정한 것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에)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라는 반어법으로 반(反) FTA론자들에게 맞섰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3월23일 '국민들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패널로 참석한 영화배우 이준기씨가 "스크린쿼터 축소는 미국에 대한 굴복 아닙니까"라고 질문하자 "한국 영화가 많이 발전했는데 한국 영화 점유율 40~50%를 지킬 자신이 영화인들에게 없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좀처럼 직설법을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웬디 커틀러 미국 협상단 수석대표가 지난해 9월 의외의 강공 어법을 구사해 한국 측을 경악하게 만든 일도 있다.

"K워드(K-word)는 말하기도 싫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이는 지난해 9월5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이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K워드'는 개성공단(Kaesung)의 이니셜이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를 아예 협상에서 다루고 싶지 않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친 대목이다.

김종훈 한국 협상단 수석대표는 "우리는 전생에 글래디에이터(노예 검투사)였다"는 말로 협상 당사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커틀러 수석대표가 "통상 협상처럼 힘든 것이 없다.

친구들이 전생에 어떤 일을 했었기에 그런 업보를 당하느냐고 농담처럼 말한다"고 얘기하자 김 대표가 "정답을 가르쳐 주겠다"며 한 말이다.

글래디에이터(Gladiator)는 고대 로마 시대의 노예 검투사로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존재다.

'통상 협상은 한 쪽의 피를 말리는 것'이라는 얘기를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

박홍수 장관은 최근 "내가 밥장관인데 요즘 밥맛이 없다"는 말로 고충을 털어놨다.

막판에 와서 미국 측이 쌀 문제를 들고 나온 데다 뼈 있는 쇠고기가 FTA 타결 여부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자 지난 19일 기자들에게 농림부 장관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7일 FTA 반대 단식 농성에 들어가면서 "이대로 FTA 비준을 받으려면 나를 밟고 가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당 의장 시절 'FTA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며 대선주자 후보로서 FTA 반대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