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업체들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전열을 재정비했고,중국 업체들은 막강한 정부지원을 등에 업고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게으르면 추월당하는 시대다."

'유럽의 보부상' '최틀러'로 불리며 지난해 삼성전자 TV를 세계 1위에 올려놓은 최지성 사장. 올초 디지털미디어(DM)총괄에서 정보통신총괄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최 사장은 최근 독일 하노버 '세빗(CeBIT)'전시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 사장은 먼저 일본과 중국기업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며 국내 IT업계의 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면서 법제와 노사관계 개혁,정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반격의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국시장에서의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 마음이 급해서 12일부터 이틀간 중국시장을 점검했다"며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자국 업체를 키우고 있어,(한국업체들이) 조금만 게으르면 추월당한다"고 걱정했다. 특히 그는 중국으로의 IT 기술 및 인력 유출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과거를 보면 우리 기업들이 어려울 때마다 중국으로 첨단기술 인력들이 많이 빠져나갔다"며 "최근 몇 년간 국내 휴대폰 단말기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대규모 인력 유출이 있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 같은 일본과 중국 업체들의 공세를 맞아 국내 라이벌인 LG전자와의 무리한 기술경쟁도 지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최 사장은 "과거 LG전자의 DD(디지털 디스플레이) 사업 본부장을 맡았던 우남균 사장 시절에는 삼성과 LG가 함께 커가야 한다고 서로 말하곤 했다"며 "국내 휴대폰업체가 삼성전자 LG전자 두 곳만 남은 상황에서 둘 다 잘 되어야 하고, 밖에서 경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최 사장은 "지난해 4분기 일시적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떨어졌지만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다"며 "아직 휴대폰 사업에 대해 배울 게 많지만 올해 점유율도 높이고 돈(이익)도 많이 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국내와 중국,인도 등지의 공장을 증설해도 30%가량 물량을 늘릴 수 있다"며 "해외 생산공장을 추가할 계획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답했다.

최 사장은 휴대폰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설명했다. 그는 우선 디지털미디어(DM)총괄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서울 본사에 있는 정보통신총괄 조직을 5월에 수원 사업장으로 이전,연구개발 조직과 마케팅 조직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로 했다.

하노버(독일)=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