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식 수협중앙회 회장이 전격 구속됨에 따라 94개 조합, 17만 조합원으로 이뤄진 어업인 최대 조직인 수협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지난 3일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주정대 판사는 2000년 단위 조합에서 부인 명의로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업무상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박 회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아내가 6억원의 한도 내에서 수산업 경영개선자금을 대체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단위 조합을 통해 9억원을 지원해줄 것을 지시 또는 부탁했다"고 밝혔다.

◇ 6일 직무대행 선임 이사회

회장 구속 사실이 전해지자 수협 중앙회는 회장 직무대행을 선임하기 위한 긴급 이사회를 오는 6일 소집키로 결정했다.

회장 유고시 경제부문 대표가 자동으로 직무대행을 맡도록 돼있던 규정이 지난 2004년 수협법 개정으로 건마다 이사회를 열어 뽑도록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김홍철 경제부문 대표, 장병구 신용부문 대표 가운데 한 명이 회장직을 겸임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제 3의 이사에게 대행직이 맡겨질 수도 있다.

대행직을 누가 맡든 현재의 수협 구조상 회장의 공석이 당장 조직 운영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수협은 지난 2001년 공적 자금을 받으면서 지도, 경제, 신용 3개 부문이 각각 소이사회를 두고 인사와 재정을 따로 운용하는 완전독립사업부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현재 박 회장은 지도 부문만 관장하고 경제(유통 등)와 신용(은행) 부문은 전문경영인이 책임지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회장 구속으로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현재 각 사업 부문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회장의 직무가 제한적이므로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각 지역.단위 조합원들과 접촉하며 취합된 어업인들의 의견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지도사업 부문의 경우, 지금까지 국회나 정부 등을 상대로 창구 역할을 해 온 박 회장의 빈 자리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 박 회장 자진 사퇴 압력 가중

신병(身柄)구속으로 정상적 직무 수행은 불가능해졌지만,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박 회장은 당분간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다.

규정상 수협 임원직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경우에만 강제 사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박 회장은 이미 지난 2005년 1월 또 다른 업무상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으나, 항소한 뒤 2년 가까이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97년 회장으로 재직하며 건설회사에 20억원을 불법 대출해주고 같은 회사로부터 약 7억5천만원을 무이자로 차용한 혐의, 99년 승진한 부하직원으로부터 인사 사례비조로 1천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이달 중순 열릴 예정이다.

그는 이번 부인 명의 불법대출 건에 대해 "억울하다"며 항소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수협의 '박 회장 체제'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구속과 항소로 얼룩진 수협 회장의 거취에 대한 안팎의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수협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우윤근(열린우리당), 김재원(한나라당) 의원 등은 최종 법적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은 존중하나, 조직을 위해 도리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박 회장의 처신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저도 억울한 부분이 많다"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법정 구속 이후 수협 내부에서도 "이제 사실상 박 회장이 제대로 수협의 대표 역할을 하기는 힘들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이 추진하던 수협 경제-지도 부문 통합과 회장 권한 강화를 뼈대로 한 수협법 개정 움직임도 박 회장의 잇단 실형 선고로 수협 회장직의 전횡 가능성과 수협 조직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되면서 설득력을 잃게 됐다.

한광원 의원(열린우리당) 등 13명의 의원은 지난 6월 16일자로 '수산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률안에 따르면 수협의 지도, 경제, 신용 등 3개 사업부문 가운데 지도와 경제 사업은 통합되고 회장이 경제 부문 대표인 부회장을 선임하게 된다.

지난 2004년 6월 수협 회장에 선출된 박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08년에 끝난다.

만약 박 회장이 앞으로 자진 사퇴나 형 확정 등으로 물러날 경우 수협은 선관위를 구성, 후보 접수를 받은 뒤 94명의 조합장이 참석하는 총회를 열어 임기 4년의 새로운 회장을 뽑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