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수주의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너 회장(65)은 1일 "한국과 미국은 강력한 경제동맹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를 맞고 있다"면서 "양국이 몇달 안에 내릴 결정은 향후 수십년의 한·미 관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퓰너 회장은 이날 한국무역협회와 세계경제연구원 공동 주최로 서울 그랜드인터콘티엔탈 호텔에서 열린 최고경영자 조찬강연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한·미·일 관계 △전시작전권 이양 등 양국간 현안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을 전했다.

◆ 한·미 '어른과 아이' 아니다.

퓰너 회장은 과거 한·미관계가 '어른과 아이'의 불평등한 관계였지만 지금은 대등한 관계라고 말했다.

그는 "한·미관계가 어른과 아이 간의 관계였던 시절을 기억한다"면서 "하지만 양국 정상은 이제 동등한 어른으로서 만나서 대화하고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 미국은 군대를 보내 한국을 보호했지만 지금은 양국 군대가 같은 편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수십년간 한국의 성장이 괄목할 만한 수준이라고 했다.

퓰너 회장은 이어 "과거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나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기업이 세계 최고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그들과 경쟁하고 있다"면서 "워싱턴 정책결정자들과 모든 미국인들은 이런 한국과 더욱 강력하고 긴밀한 관계정립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FTA로 경제자유도 높여야

퓰너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이번 한·미 FTA 협상이 실패하면 재협상을 추진하는 데 더 많은 신뢰와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부 한국민들이 미국의 파워가 한국에서 확대되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종속될 것을 우려해 FTA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양국은 동등하고,한·미 FTA는 한국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국가들과 더욱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개월간 한·미 FTA에 대한 지지율이 뚜렷하게 떨어졌다는 한국의 한 언론 기사를 보고 실망했다는 그는 "왜 한·미 FTA가 중요한지,한·미 FTA가 한국이 지역 내 최대 경제대국인 일본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란 점을 한국 국민과 지인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퓰너 회장은 "얼마 전 미국 미시간주의 출신의원이 한·미 양국의 자동차 관련 규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법안을 미 의회에 상정하는 등 반대 입장도 있지만 시애틀에서 열리는 3차 협상을 비롯한 후속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올해 크리스마스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성공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퓰너 회장은 특히 한국의 경제자유지수 순위를 거론하며 "한·미 FTA는 한국을 선진 경제국가로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FTA 체결이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한국 내 반대 목소리를 감안해서인지 "밀물은 모든 배를 들어 올린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 한국민 안전ㆍ양국 동맹 고려해야

퓰너 회장은 강연에서 '뜨거운 감자'인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시기가 적절한가"라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개인적인 소견을 밝혔다.

그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미군 재배치라는 관점에서 전시작전권 문제도 이해돼야 한다"면서 "지금이 적기냐 아니냐는 문제는 양국의 정책변화가 한국민을 더욱 안전하게 하느냐,또 동맹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북한이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양국이 한국민의 안전과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시작전권 문제를)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전시작전권 이양은 시기상조'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지만 부시 대통령이 전시작전권 이양을 기정사실화한 마당에 "미국 보수층을 대변하는 퓰너 회장이 말을 아꼈다"는 게 참석자들의 반응이었다.

퓰너 회장은 북한 핵 문제와 관련,양국 정부 관리들 간의 인식차이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국제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면서 "헤리티지 재단은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주요 동맹국과의 유대관계 강화가 핵무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또 "실제로 존재하든,그냥 느껴지는 것이든 미국과 동북아 동맹국 간에 어떤 형태로든 균열이 생기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대북 관계에 있어 한·미·일 3국은 통일된 접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최근 한·미 정부의 의견차이와 한·일 관계 악화는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