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리능력 부재가 원인.."확고한 기준 세워야"

최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정해진 절차와 기본적인 법률을 무시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M&A 시장의 난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우건설과 LG카드 매각 외에도 앞으로 진행될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등 굵직굵직한 M&A건도 과연 제대로 처리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대우건설의 경우 입찰의 기본원칙에 해당하는 비밀유지협약이 깨져 입찰가가 미리 공개되는 일이 발생했고 국책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LG카드 매각은 기본적인 법률 검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국제적으로 망신을 샀다.

◇ 문제는 정부의 M&A 관리능력 부재 = 이처럼 M&A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경험부족에서 비롯된 정부의 M&A 관리능력 부재를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우선 대우건설 매각을 담당하고 있는 자산관리공사(캠코)는 매각 일정을 수시로 바꿨으며 입찰자격에 대해서도 갈팡질팡하는 등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또 입찰기업의 입찰가가 사전에 낱낱이 공개되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언론 탓만 할 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재정경제부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대우건설 매각 심사 소위원회를 열기 1시간 전에 입찰자료를 심의위원들에게 전달하는 바람에 위원들의 반발과 '졸속심사'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일정이 연기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밖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LG카드 매각을 추진하면서 입찰 적격업체 선정까지 마친 상황에서 뒤늦게 공개매수 조항을 발견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M&A의 ABC도 모른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증권사의 한 M&A 담당자는 "M&A 경험이 부족한 정부에서 이해관계자가 많은 큰 규모의 M&A를 진행되다 보니 잡음이 심한 것같다"며 "최고 가격의 매각을 통한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단순 명료한 목표하에 공평한 기준을 확정하고 투명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의 오문석 상무도 "최근 LG카드와 대우건설 M&A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경험 미숙과 책임성 부분"이라면서 "캠코나 산업은행이 매각을 추진하지만 채권단과 책임 소재 및 매각 원칙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세워지지 않은 채 매각을 추진하다 보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부형 연구위원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면서 부실기업이 등장하고 공적자금이 투입돼 정부가 관리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면서 "정부가 그 때 차후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워크아웃 과정에서 새로운 M&A 시장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예측하지 못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예측을 하지 못한 탓에 향후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규제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책임소재 명확히..확실한 기준 마련해야" =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타난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앞으로 진행될 정부 주도 M&A가 시장의 신뢰를 얻고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한편 확실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례로 캠코 고위 관계자는 대우건설 입찰과 관련, 비밀유지 협약을 지키지 않은 업체에 대해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체적인 감점 규정 등이 마련되지 않아 입찰가가 새나가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불이익을 받은 업체는 없었다.

이처럼 명확한 기준과 책임소재 제시가 없이 '엄포성' 발언과 대책이 계속되면 시장의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이번 대우건설과 LG카드 매각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계속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M&A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일관된 기준도 정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시장에 매물을 내놓고 거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국가경제에 큰 부분을 좌우할 수 있는 기업들을 국가에서 M&A 할 때는 바라는 방향이 뭔지, 외국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알고 매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G경제연구원의 오 상무도 "M&A 시작 전에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확고한 기준을 만든 후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