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화폐 단위를 1000 대 1로 절하할 것을 중앙은행과 의회에 지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21일 보도했다.

명분은 인플레(물가상승) 퇴치지만 실제로는 바뀐 통화에 자신이 원하는 역사적 인물을 새겨넣는 등 정치적·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차베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은 현재 미국 달러당 2150볼리바르로 고정된 자국의 통화 단위를 대폭 절하,'누에보 볼리바르'라는 이름의 새 통화를 도입하는 것.로드리고 카베자스 의회 재정위원장은 "화폐 개혁의 목적은 인플레를 잡는 것"이라며 "이르면 2008년 1월부터 새 통화가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화폐 개혁이 순수한 경제적 목적보다 정치적·상징적 목적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1000 대 1 수준의 화폐 단위 절하는 물가상승률이 수천%를 넘나드는 경우에 실시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4.4%으로 '살인적' 수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차베스가 정말 원하는 것은 자신이 선호하는 역사적 영웅들의 얼굴을 새 통화에 새겨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 통화가 도입되면 환율이 달러당 2.15누에보볼리바르로 바뀌게 돼 베네수엘라 통화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은 '착시효과'도 줄 수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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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한 나라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액면가(디노미네이션)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가령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식이다.

보통 극심한 인플레로 인해 경제량을 화폐적으로 표현하는 숫자가 많아서 초래되는 국민들의 계산상,지급상의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실시된다.

물가 임금 채권채무 등 경제수량 간의 관계에는 변화가 없다. 실질적으로 화폐가치를 낮추는 평가절하(devaluation)와 달리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이론적으론 중립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