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주영이 네 번째 가출을 감행한 끝에 당도한 곳은 하역 노가다를 뛰는 인천부둣가였다.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노동자 합숙소에서 잠을 자던 그는 자신의 몸 위를 기어오르며 괴롭히는 빈대로 인해 별의별 방법을 써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어느날 물이 담긴 양재기에 탁상 다리 하나씩 담가놓은 채 그 위에서 잠을 잔다.


예상대로 빈대는 양재기 물 속에 익사한 채로 발견된다.


한데 며칠 후 그는 벽을 타고 천장까지 기어올라 정확히 누워있는 자신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며 떨어지는 빈대의 공격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한낱 미물 또한 생존 하나를 위해 비상한 지혜와 온몸을 내던지는 실천을 불사하는 것을 보고 그는 '캔두이즘(can do,할 수 있다는 정신)'의 원리를 배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5주기(21일)를 앞두고 그의 경영철학과 성공요인을 분석한 '정주영 경영정신'(홍하상 지음,바다출판사)과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권영욱 지음,아라크네)이 나란히 출간됐다.


두 권 모두 정주영 신화의 근본 에너지가 무엇인지,어떤 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지,실천력의 핵심은 무엇인지 등을 드라마틱하게 전해준다.


특히 가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선택의 기로 앞에서 '된다'와 '안 된다'의 비율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지,그리하여 마침내 '꿈'이라 불리는 개개인의 소망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는지를 정주영의 '실천주의 경영철학'을 통해 일깨운다.


단순히 자료만 모은 게 아니라 주변 인사들의 인터뷰와 현장 확인까지 거쳐 더욱 생생하다.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을 지휘했던 이명박 현 서울시장(전 현대건설 사장) 등 유명한 현대출신 인사들, 정주영과 함께 경부고속도로 공사장에서,섭씨 40도가 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치열한 현장에서,위험천만했던 서해안 물막이 공사장에서 땀을 흘렸던 사람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면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은 정주영과 처음 조우하던 날 황당한 일화를 들려주며,병원에 입원한 직원을 충격요법으로 낫게 해주려고 내일 당장 일본 출장을 보내버리는 엉뚱한 왕회장의 얘기도 전해준다.


조선소 건립을 위해 영국에 갔을 때 옥스퍼드 대학 캠퍼스를 10분간 배회하다가 은행으로 찾아가 "방금 전 조선소 건립에 대해 논문을 제출했더니 옥스퍼드 대학에서 나에게 2시간 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주었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정주영의 배포에서 '정주영 스타일'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실천주의 경영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이런 말에서도 발견된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퍼센트에,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 10퍼센트를 가지고 일해 왔다.


안 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퍼센트도 끼워 넣지 않는다."


그는 평소에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라고 자신을 불렀다.


그가 들려주는 부자철학은 그래서 의미가 새롭다.


"부자가 되는 길은 등산과 같은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 산꼭대기만 쳐다보면서 그것을 목표로 허겁지겁 오르다가는 얼마 못 가서 돌부리에 채이거나 부딪치거나 해서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발밑과 주위를 살피면서 주의 깊고 차분하게 호흡을 조절하면서 꾸준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정주영 경영정신>


1.나는 절대 머무르지 않는다.

2.지금의 실패보다 나중의 이익을 예상하라.

3.기업가가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4.학벌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일을 한다.

5.위기는 항상 기회를 숨기고 있다.

6.기업가는 부유한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7.필요한 비난과 불필요한 비난을 구분하라.

8.나의 꿈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9.참된 위대함은 소박함에 있다.

10.내 존재는 없어져도 내 사업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