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직을 물러난데 이어 벤 버냉키 의장이 1일 취임했다. '과연 그린스펀 답고 버냉키 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버냉키 신임의장은 1일 FRB 이사회 회의실에서 퍼거슨 부의장 주재로 취임 선서를 하면서 4년 임기의 제14대 FRB 의장 직무를 시작했다. 버냉키는 그러나 언론과의 접촉을 일체 꺼리며 자신의 의중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입'을 주목했던 시장참가자들 사이에선 실망감도 나왔으나 덕망있는 경제학자다운 신중한 처신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 관계자는 "지난 2개월여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자신의 구상을 가다듬은 것으로 안다"며 "오는 15일 의회에서 가질 FRB의 반기정책보고를 통해 집무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버냉키 다운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아직 실체가 없긴 하지만 신중한 첫 행보 자체가 일단 점수를 받는 분위기다. 최고의 FRB 의장으로 평가받는 그린스펀은 마지막 날도 최고수답게 보냈다. 그가 마지막으로 주재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그동안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이날만은 언론에 공개됐다. 그는 '포즈를 취해달라'는 카메라맨들의 요청도 못들은 체하며 '오늘이 무슨 날이냐'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 후 발표한 성명서에서도 추가 금리인상을 상징하던 '신중한(measured)'이란 문구를 삭제하는 등 후임자의 재량권을 충분히 넓혀주는 배려를 나타냈다. 후임자를 배려해 퇴임 기자회견도 고사한 그는 180명의 직원과 함께한 고별 오찬과 1500여명이 참석한 고별 리셉션에서 "FRB는 막중한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옆에서 지켜보며 성원하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그의 이름을 동판에 새긴 의자와 달러화를 모아 만든 액자,이날 그가 주재한 회의 도중 게양됐던 FRB 깃발을 선물로 증정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