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털'이 합리적인 소비로 인식되면서 물품을 구입하는 대신 빌려 쓰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물건을 빌려 사용하는 렌털은 처음 비디오 도서 등의 분야에서 시작됐다. 그러던 것이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생활 가전으로 확대된 데 이어 기저귀,어린이 장난감,정보기술(IT) 기기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급속히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텐트,어린이 예복,한복,인테리어 용품,그림,머리 핀,심지어 결혼식 하객 등 이색 렌털 서비스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품을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렌털시장 왜 뜨나 렌털 소비문화가 확산된 데는 '2635세대(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26∼35세 사이 소비자)'가 새로운 구매 주체로 부상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초 외환위기 이후 씀씀이를 줄이는 수단으로 시작된 렌털 서비스가 합리적인 소비와 개성,개인주의 등을 중시하는 2635세대의 취향과 부합되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홍익대 경제학과 박원암 교수는 "탈이념적이고 인터넷에 익숙한 '2635세대'의 소유보다는 이용을 중시하고 유행과 개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소비 측면에서는 렌털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들이 국내 경제활동 인구의 24%에 달하게 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 최신 유행을 따라갈 수 있다는 장점도 렌털 시장 팽창에 한몫 하고 있다. 인터넷 업체에 근무하는 '싱글족' 김미경씨(28·여)는 최근 열린 고등학교 동창회 겸 송년회에 참석,친구들로부터 시샘 어린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근사한 드레스에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가방과 시계 등으로 한껏 멋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치장하는 데 불과 10만원가량 들었다. 김씨는 "장롱에 걸어 둘 옷과 액세서리 등을 구입하기 위해 수백만원씩 쓰는 것이 오히려 낭비"라며 "올 초부터 특별한 모임이 있을 땐 렌털 서비스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 불황과 소득 양극화 흐름 속에 주력 소비계층이었던 40∼50대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실속형 소비가 자리 잡고 있는 추세도 또 다른 원인이다. 중앙대 생활과학대 김영삼 교수는 "불황으로 호주머니가 가벼워지자 한번 쓰고 말 제품을 비싸게 사서 보관·관리하느니 저렴한 가격에 빌려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점이 렌털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색 렌털 서비스도 잇따라 등장 최근 들어 상식을 깨는 신종 렌털 서비스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친지가 적은 결혼 예정자들을 겨냥한 '하객 렌털'이 대표적.일당은 1명당 5만원 선이며 성별 연령대별로 다양하게 섭외할 수 있다. 하객뿐만 아니라 신부 도우미,사회자,주례인까지 '대여' 가능하다. 한복 임대 프랜차이즈인 황금바늘의 길기태 사장은 "지금까지 혼수품에 빠지지 않았던 한복도 요즘 들어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며 "상당수 신혼부부들은 결혼식과 양가 방문 때만 한복을 빌려입는 대신 남는 비용으로 다른 혼수를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 기간 애견을 빌려주는 업체도 생겼다. 분양가의 10% 금액으로 대여할 수 있으며 키우다가 맘에 들어 계속 키우고 싶으면 대여료를 제외한 금액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 플라스틱 운동장,자동 급식기,미용 세트 등 애견 용품까지 빌려준다. 기저귀 렌털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베이비아트 포베베 아기사랑 순한기저귀나라 등 업체 수만 10개가 넘는다. 수족관,식물,CC(폐쇄회로) TV,구강청결제 등 수요가 있을 법한 제품마다 렌털 대상이 되고 있다. 렌털 전문업체 리피아닷컴의 변준희 팀장은 "직접 설치하려면 초기에 100만원 이상 들어가는 CCTV의 경우 3년 계약으로 임대하면 한 달에 6만원만 내면 된다"며 "정기적으로 관리 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 임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명품 대여도 인기 고급 의상이나 핸드백 구두 액세서리 등을 빌려주는 명품 대여업체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미 온라인을 중심으로 40여개 업체가 영업하고 있다. 럭셔리9샵은 손님이 건넨 명품들을 매입한 뒤 '명품족'들에게 하루 일정 금액을 받고 빌려준다. 100만원짜리 루이비통 핸드백은 15만원을 보증금으로 받고 하루 1만원씩에 대여한다. 박승우 대표이사는 "20~30대를 중심으로 명품이 사치품이 아닌 기호품이란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쓰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목걸이 반지 귀고리 등 귀금속 대여업체도 생겨났다. 제이엠카드는 연 9만6000원의 회비를 내면 1회 6만원 한도의 제품을 최대 6회까지 무료로 빌려준다. 그림 렌털도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병원이나 회사에서 빌려갔지만 최근 개인을 대상으로 한 대여가 늘고 있다. ◆갈수록 경쟁 치열 정수기 등 웰빙 가전과 자동차 등 기존 주요 렌털 제품의 이용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허'자 번호판을 단 렌터카 시장 규모는 2001년 5800여억원에서 올해 8600여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럭셔리9샵 피폭스 등 10여개 이상 중고명품 렌털업체가 등장했다. 정수기에서 야구 글러브까지 취급하는 종합 렌털 프랜차이즈인 렌탈OK 전성진 사장은 "1만여개로 추산되는 생활밀착형 렌털업체들의 경우 최근 연간 20∼30% 내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삼근 창업과사업아이템 대표는 "건설장비 임대를 제외한 전체 렌털 시장 규모는 올해 5조원 가까이 될 것"이라며 "특히 IT기기 렌털 시장은 매년 100% 이상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철수·강동균 기자 kcsoo@hankyung.com